“미국으로 망명보냈던 분들이…” 한국당의 기생충 공약에 진중권이 한 말

입력 2020-02-12 06:20 수정 2020-02-12 08:26

자유한국당이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한 영화 ‘기생충’에 찬사를 보내며 ‘봉준호 맞춤 공약’을 잇따라 내놓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의 보수, 절망적이다. 봉준호 감독은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CJ 이미경 부회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려 미국으로 망명 보냈던 분들 아닌가”라며 “세상에 자본가를 탄압하는 보수 정권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했다.


“얼굴도 참 두터우시다(두껍다)”고 일갈한 진 전 교수는 “게다가 그 방식이 생가복원, 정확히 박정희 우상화하던 방식이다. 행여 이 소식이 외신으로 나가면 문화강국 한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겠지”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또 “이분들 마인드가 딱 70년대에 가 있다”며 “모두가 똑같은 달력을 쓴다고 모두가 똑같은 시대를 사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블랙리스트가 문화예술인들에게 큰 역할을 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좌파’스피커들 입 막겠다고 한 짓일 텐데, 어차피 좌파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이미 시장에서 혼자 먹고사는 사람들이다”라고 한 진 전 교수는 “작업하려고 굳이 정부에 손 벌릴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연극이나 독립영화, 조그만 예술실험을 하는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 거다”라고 했다.

“지원금이란 쥐꼬리만한 데 그걸로 무슨 타격을 주겠다는 건지. 그 짓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진 전 교수는 “그냥 높은 분들이 시키니 공무원들이 대충 떠오르는 대로 죄목을 적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외려 좌파들에게 훈장만 준 셈이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블랙리스트 3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설명하면서 “별로 희생한 것도 없는 이런 영예를 누려도 되나 미안해서 반납하려고 하는데 이게 반납할 수 있는 훈장이 아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그가 비판한 자유한국당의 ‘봉준호 감독의 맞춤형 공약’은 생가복원부터 시작해 박물관 건립까지 다양하다. 대구 달서구병이 지역구인 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11일 원내대책회의 발언에서 “대구신청사와 함께 세계적인 영화테마 관광메카로 만들겠다”며 봉준호 영화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강 의원은 “봉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의 자랑이다.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나의 이웃 동네에서 학교를 다녔다”며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를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문화예술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CJ그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CJ그룹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쾌거가 있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한 강 의원은 “경영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치열한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CJ그룹이 한국영화에 끼친 긍정적인 역할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배영식 한국당 예비후보도 같은 날 “오스카 4관왕을 휩쓴 봉 감독의 위대한 공덕을 영구 기념하고 계승시켜야 한다”며 봉준호 영화의 거리, 봉준호 카페 거리,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건립, 기생충 조형물 설치 등의 봉준호 종합선물세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일엔 박용찬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국 영화 기생충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연이어 들어온 놀라운 소식”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또 “전 세계에 한국 영화, 한국 문화의 힘을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봉 감독과 이 부회장은 한국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던 인물이다. 때문에 한국당이 선거를 앞두고 봉 감독과 이 부회장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봉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이창동, 박찬욱 감독과 함께 ‘좌파 문화예술인’ 명단에 올랐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지난해 2월 발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2009년 이명박 정부시절 봉 감독의 영화 ‘괴물’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봉 감독은 특히 ‘민노당(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력 때문에 ‘강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었다. 박근혜 정부에도 국정원은 이 같은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송강호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9473명 명단’에 블랙리스트로 등장한다. 송강호는 문화예술인 594명이 2015년 5월1일 발표한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성명’을 발표해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시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같은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8년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당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CJ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취지의 지시를 했으며 이를 CJ측에 VIP(대통령) 뜻”이라고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조 전 수석은 “2013년 7월4일 박 전 대통령이 ‘CJ그룹이 걱정된다. 손경식(CJ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CJ그룹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CJ그룹이 제작한 방송 문화 콘텐츠 때문이다. 2017년 10월 국정개혁위원회가 공개한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3년 8월부터 CJ그룹을 사찰한 뒤 ‘CJ의 좌편향 문화 사업 확장 및 인물 영입 여론’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여기엔 tvN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에서 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 ‘또’를 욕설을 가장 많이 하고 안하무인의 인물로 묘사했다는 지적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이 같은 묘사는 박 전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CJ그룹이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기획‧제작해 야당 대선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에 제작비를 투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국정원은 이 부회장이 ‘친노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대모’로 불리는 이 부회장은 2014년 타의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201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이 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에 책임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렸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