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 무장’ 군대 거느리고 국회 들이닥친 엘살바도르 대통령

입력 2020-02-11 15:14 수정 2020-02-11 17:40
엘살바도르 군경이 9일(현지시간)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과 함께 의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대규모 치안 장비 도입안을 추진해 국회와 갈등을 빚던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무장 군인과 경찰을 거느리고 국회 안으로 들어가 무력 시위를 벌였다. 자신의 정책을 강력 지지하는 군경 세력을 동원해 입법부를 위협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은 10일(현지시간)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소총 등으로 무장한 군경이 전날 수도 산살바도르에 위치한 국회를 일시 점거했다고 보도했다. 부켈레 자신이 특별 소집한 임시 국회 자리였다. 엘살바도르 국회에 완전 무장한 군경이 들이닥친 건 1991년 내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본회의장에 들어선 부켈레 대통령은 국회의장석으로 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군경이 본회의장 의원석을 빙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의장석에 앉은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의원들을 향해 “국민들에게는 반역의 권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은 정부의 차입 계획에서 촉발됐다. 부켈레는 자국이 갱단의 폭력 범죄로 얼룩진 상태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선 군경이 더 좋은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의회에 1억900만 달러(약 1294억원) 규모의 무기 도입안을 제시했다. 의회가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승인을 거부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젊은 아웃사이더 정치인였던 부켈레는 지난해 불과 38세 나이로 빈사 상태나 다름 없었던 30년 양당 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에 올랐다. 기성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그에게 국민들은 여전히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국회 기반은 취약하다. 엘살바도르 국회 84석 중 부켈레가 속한 우파 국민통합대연맹(GANA) 의원은 11명 뿐이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부켈레는 지난 7일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나와 함께 의회를 압박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9일 임시 국회를 열어 이 문제를 처리하자고 촉구했다. 군과 경찰 수장은 곧바로 지지 의사를 밝히며 대통령에 힘을 실어줬다. 9일 국회 밖에는 수백 명의 지지자가 모였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임시 국회 참석을 거부했다. 부켈레는 지지자들에게 “이 쓸모없는 의원들이 이번주에도 정부안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다음주 일요일에 또 임시 국회를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행동을 성토했다. 보수 정당 국민연합당(PCN) 소속 마리오 폰세 국회의장은 “쿠데타였다. 머리에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는 응답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좌파 정당 파라분보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의 오스카르 오르티스는 “엘살바도르 민주화 후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고 말했다. 부켈레의 지지율 고공행진이 그를 권력에 취한 독재자처럼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AP통신은 “부켈레의 권력 놀음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부켈레는 쏟아지는 비판에 “부패한 기득권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반발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국회 밖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의회 규탄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