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칸영화제가 개막하자 온라인에는 ‘#bonghive’라는 해시태그를 내건 게시물이 잇달아 올라왔다. 경쟁부문 진출작인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봉(bong)과, 벌집을 가리키는 단어 하이브(hive)를 조합한 단어였다. 봉하이브는 벌떼의 움직임처럼 열렬하게 봉 감독을 응원하던 팬덤을 지칭했다. 팬들은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선전할 것을 한목소리로 응원했다. 온라인에는 황금종려상을 뜻하는 ‘팔메 도르(Palme d’Or)’를 묘하게 비튼 ‘봉 도르(Bong d’Or)’라는 신조어가 새겨진 티셔츠가 거래되기도 했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노래 ‘제시카 징글’을 인기 검색어로 만든 것도 봉하이브의 힘이었다.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봉하이브는 지구촌 시네필(Cinephile‧영화광)이 만든 울타리 안에만 머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기생충이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거머쥐고, 북미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자 봉하이브는 기생충을 향한 대중의 지지를 드러내는 기호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LA타임스는 지난달 골든글로브에서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자 “상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봉하이브의 일부가 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서는 봉 감독을 향한 ‘팬심’을 표시하는 할리우드 명감독이나 톱스타도 한두 명이 아니다. 도대체 ‘봉준호 영화’의 어떤 매력이 봉하이브를 만들어낸 것일까.
알려졌다시피 봉 감독 영화 상당수는 야멸찬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봉 감독은 갈수록 기우뚱해지는 불평등 이슈나 난망해지는 계급 역전의 문제를 누구보다 유려하게 그려내며 각광을 받았다. 이들 소재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공감을 얻는 이야기였고, 특히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용이었다. 북미 시장에서 기생충 열풍의 끌차 역할을 한 관객이 20, 30대인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일컬어지는 봉준호 영화의 개성을 강력한 팬덤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은 영화적으로 접목하기 어려운 스릴러와 코미디를 하나로 묶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서구의 영화팬들은 봉준호 영화의 유머에 국내 관객보다 강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그의 영화가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얼개를 고집하지 않는 점도 신선한 일탈처럼 여겨지는 듯하다”고 했다.
봉준호 영화가 가진 독특한 세계관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의 영화는 부자를 적대시하지도, 가난한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만 보지도 않는다. 인간의 실수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의 영화는 이 같은 균형 감각을 바탕으로 갈수록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감독”이라고 평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가식 없는 태도로 적재적소에 유머를 곁들이는 봉 감독의 화법도 그의 작품을 향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기생충 신드롬’이 시작된 이후 봉 감독이 각종 인터뷰나 시상식에서 했던 말들은 ‘봉준호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곤 했다.
가령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자막)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한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그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묻자 “오스카는 로컬(지역 영화상)일 뿐”이라고 답해 화제가 됐다.
그의 화술 덕분인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봉 감독의 등장만으로도 미소부터 짓곤 한다. 예컨대 지난 2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봉 감독이 말하는 도중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카메라에는 봉 감독이 한국어로 “왜 웃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