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엔 마틴 스콜세지와…” 명장면 만든 봉준호의 인연

입력 2020-02-11 10:27 수정 2020-02-11 10:54
봉준호 감독(왼쪽)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 EPA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2020 아카데미 시상식 진짜 주인공이 됐다. 4번이나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는 유머러스하고 진실된 수상 소감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그중 감독상 수상 후 함께 후보에 오른 감독들과 영광을 나눈 장면은 전 세계 영화인을 끓어오르게 했다.

봉 감독은 1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국제영화상에 이어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 그는 “조금 전 국제영화상을 받고 오늘은 할 일이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었다”는 유쾌한 말로 소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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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할리우드 거장이자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함께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콜세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어렸을 때 영화 공부를 하면서 가슴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 말이 통역사를 통해 옮겨지자 봉 감독은 마이크를 잡고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에게서 나왔다”(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고 했다. 존경하는 감독에 대한 헌사를 전하는 이 대목만큼은 통역 없이 곧바로 전달됐고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abc 방송 중계 캡처

앉은 채 봉 감독의 말을 듣던 스콜세지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모아 고마움을 드러냈다. 영화인들의 환호가 계속되자 봉 감독은 팔을 뻗어 스콜세지를 다시 한번 가리켰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때 스콜세지는 눈시울이 살짝 불거지는 등 울컥하는 표정을 지으며 거듭 인사를 전했다. 봉 감독 역시 “학교에서 이분 영화를 보며 공부했었는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말을 더했다.

봉 감독과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명장면은 시상식 SNS에도 그대로 ‘박제’됐다. 아카데미 공식 트위터에는 봉 감독이 스콜세지 감독을 보며 했던 수상소감을 옮겨 적은 이미지를 게시했다. 국내외 네티즌들은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소감이었다”는 댓글을 쏟아냈다.

두 감독의 인연은 특별하다. 봉 감독은 존경하던 스콜세지 감독을 자신의 영화 ‘옥자’ 뉴욕 시사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지난달 열린 제72회 미국감독조합상(DGA)에서도 마주해 대담을 나눴다.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트위터 캡처

봉 감독은 스콜세지 감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왔다. 팬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최후의 만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 5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답하며 스콜세지 감독을 포함시킨 적도 있다. 스콜세지 감독 역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봉 감독을 극찬했다. “봉준호는 천재가 분명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아카데미 경쟁작 중 유일하게 ‘기생충’을 유일하게 언급했었다. 그는 “오스카 후보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기생충’”이라며 봉 감독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콜세지 감독을 언급한 수상 소감의 배경을 밝혔다. 그는 “감독상이 호명돼 올라갔을 때 워낙 객석에 영화인들이 많아 복잡한데도 스콜세지 감독님과 딱 눈이 마주쳤다”며 “그다음에 ‘조커’ 토드 필립스, ‘1917’ 샘 멘데스를 봤다. 좌석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혀 몰랐는데 후보 감독들과 순식간에 눈이 마주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제가 스콜세지 감독을 워낙 존경했고 대학교 동아리와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배울 때도 수없이 작품을 봤다”며 “같이 노미네이션된 것 자체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고 영광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이어 “무대에서 했던 말들은 다 진심이었다”며 “데이비드 톰슨이 쓴 책에서 스콜세지에 대해 한 말이었다. 제가 밑줄을 쳤던 문구”라고 설명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