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머 어떡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LA에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10일 지구 반대편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허름한 피자집에서는 주인 엄항기(65)씨가 ‘기생충’이 호명될 때마다 팔짝팔짝 뛰며 박수를 쳤다. 엄씨가 운영하는 피잣집 ‘스카이피자’는 영화에서 여러 일을 전전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주인공 가족 4명이 피자상자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장소다.
엄씨와 남편 강양희(71)씨는 16년 전인 2004년부터 좁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 노량진동 언덕배기 동네에서 피자를 굽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각각 빵집 등을 10년 넘게 운영했다가 마지막 도전이라며 시작한 피자집이었다. 그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시상식을) 보는 내내 가슴 졸였는데 마지막 작품상을 탈 때는 짜릿함을 느꼈다”며 “봉 감독과 배우들이 트로피(오스카)를 받으러 나올 때는 내가 다 성공한 기분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부부가 처음부터 영화 촬영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크랭크인(영화 촬영) 직전이었던 2018년 봄 영화사 관계자들이 “피자집을 영화 촬영 장소로 쓰고 싶다”며 찾아왔다. 남편 강씨는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며 거절했지만 엄씨가 마음을 돌렸다. 그는 “언제 또 영화 촬영을 해보겠냐”면서 촬영에 동의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촬영은 오후 2시까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엄씨는 “(주인공) 가족들이 피자를 만들고, 먹는 장면과 박스 접는 장면을 우리 가게에서 찍었다”면서 연신 입꼬리를 올렸다.
부부는 촬영을 지켜보며 영화가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엄씨는 “봉 감독이 우리를 포함해 스탭들과 배우들에게 일일이 존댓말을 쓰면서 현장을 지휘했다”고 회고했다. 부부는 영화 개봉 이후 영화사가 제공한 티켓으로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개봉 후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져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부부는 “기생충 촬영지 맞죠?”라며 찾아오는 한국인 손님부터 남미 유럽 아시아 가리지 않고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가 아니라 장사가 여전히 어렵다”면서도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관객들 덕에 조금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날도 가게에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친구들과 함께 가게에 들어와 식사를 하던 송재순(67)씨는 “우리 동네에서는 매번 피자가 생각날 때마다 시켜먹던 곳”이라며 “우리 동네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영화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