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저 여자가 왜 저랬을까 한 번 생각해주길”

입력 2020-02-10 18:55 수정 2020-02-10 22:28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37)에 대해 검찰이 20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고씨의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세번째 재판을 받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한 고유정. 연합뉴스

“의붓아들이 죽던 날 밤 청주 집에선 여러 공교로운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결코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은 10일 선고 전 마지막 재판에서도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 전남편 살해·사체손괴·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우발적 살인이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봉기)는 지난 11차 재판에서 검찰이 고유정에 대해 사형을 구형한 가운데 이날 오후 201호 법정에서 결심 공판을 속개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최종 변론과 피고인 최후 진술에 앞서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관해 직접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현 남편과 떨어져 다투던 시기에 뜬금없이 남편의 잠버릇을 거론한 이유, 죽은 의붓아들과 고유정의 아들을 동시에 데려오지 않고 의붓아들만 먼저 청주 집으로 데려온 이유, 의붓아들 사망 후 사인을 알기도 전에 친정엄마에게 돌연사라고 말한 이유, 의붓아들 사망일에 의붓아들 외가 가족들의 카톡 저장 명을 바꾼 이유 등에 관해 질문하며 고유정에게 의붓아들을 살인했는 지 물었다.

증인석에 선 고유정은 극구 부인했다. 고씨는 의붓아들에 대해 “남편으로부터 엄마 젖을 먹지 못 하고 컸다는 말에 평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동갑내기인)내 아들과 (의붓아들을)일란성 쌍둥이처럼 키우고 싶었다”며 “부검 후 화장한 아이의 유골함을 내가 직접 공항으로 들고 가기도 했다”고 했다.

고씨는 “현 남편이 자신을 의붓아들 살인범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장을 받았을 때 내 사건(전남편 살해)이 크니까 이러는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며 “내가 그 아이를 죽였으면 그 아이가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현 남편이)왜 내게 뒤집어씌우려는 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단 버티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날 (청주 집에서)여러 공교로운 일들이 있었지만, 결코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도 최종 변론에서 고씨에게는 의붓아들을 살해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네 사람은 꽤 자주 시간을 보냈고, 두 아이가 의지하며 자라길 바랐다. 의붓아들이 죽은 2019년 3월 2일은 네 가족(현 남편, 고유정, 의붓아들, 고씨 아들)이 청주집에 모여 살기로 하면서, 불안 불안하던 고씨의 결혼생활이 새롭게 시작되는 희망의 시기였다”며 검찰의 동기 소명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실제 고씨의 아들은 청주로 가기 위해 제주에서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겠다고 말을 해, (사건 후)다시 다니는 데 고생했다. 계획된 살인이라면 이럴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또, “현 남편의 모발에서 독세핀 성분이 나왔다는 국과수의 조사결과가 있지만, 국과수의 독세핀 모발 감정 결과는 방법이 정립되지 않아 믿기 어렵고, 투약 시기도 특정할 수 없어 현 남편이 스스로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전남편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최종 변론에서 피해자와의 만남이 백주대낮에 여러 사람에게 공개된 자리였던 점, 사건 현장이 여러 개의 단독주택과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둘러싸여 범행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던 점, 현장에 아들이 함께 있었으며, 덩치가 왜소한 피고인이 굳이 혈흔 등 처리가 어려운 칼을 살해 도구로 사용한 점 등에서 계획된 살인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펜션 맨 안쪽 주방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혈흔 비산 흔적은 검찰의 주장처럼 피고인이 도망가려는 피해자를 쫓아가며 찌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칼에 한 번 찔린)피해자가 도망가는 피고인을 뒤쫓으며 흘린 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또 “범행 일주일 전부터 당일까지 피고인의 모든 검색내역을 상세히 보았을 때 이 사건과 관계된 동기를 찾기 어렵고, 피고인은 사건 현장에서 펜션 수건으로 피를 닦고 사체를 옮길 여행용 가방을 사건 발생 뒷날 구입하는 등 범행을 미리 준비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많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이날 재판정에서 범행 현장에 함께 있던 고씨의 아들이 “놀아준 삼촌(친아빠, 피해자)이 엄마를 뾰족한 것으로 찔러서 엄마가 아파했다”는 진술을 하는 동영상을 틀어보이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휴대전화 내역을 보면 사망 전 다른 여성과 성적인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정황들로 볼 때 (사건 당일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해 칼로 한 차례 찔렀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검찰의 주장은 비약적인 추정적 판단으로 검찰이 사후적으로 끌어다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유정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그날 전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었을 텐데, 아빠 잃고 엄마 잃고 혼자일 아이를 생각하면 내 몸뚱이가 뭐라고”라며 말끝을 흐리고 눈물을 흘렸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청주 사건도 내 목숨을 걸 수 있다. 내 새끼를 걸고 사실이 아니다. 아닌건 아니”라며 “저 여자가 왜 저랬을까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버티고 있다”며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고씨의 선고공판은 20일 오후 2시 열린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방청석에 있던 여성이 불법 녹음을 하다 법정경위에 적발돼 재판장으로부터 삭제 명령을 받고 감치재판으로 이어지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여성과 재판부 간 설전이 벌어졌으나, 파일을 삭제하기로 하면서 감치나 별도의 과태료 처분은 하지 않았다. 이 여성에 앞서 또다른 여성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불법 녹음을 하다 적발돼 재판장으로부터 호된 제재를 받았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