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 셧다운 풀리지 않았다

입력 2020-02-10 17:39 수정 2020-02-10 19:28
對中 중간재 수출입 1위 한국 타격 심화 예상
중국경제 4배 커져 사스 때와 충격 비교 무의미할 수도

보안직원이 지난 8일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번화가인 산리툰 거리에 있는 애플스토어에서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으로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해 춘제(春節) 이후 열흘간 연기했던 조업을 10일 공식 재개했다. 칭하이성, 깐수성, 티벳·신장자치구 등 이미 지난 3일 재개된 4곳과 신종 코로나 발원지 우한시가 있는 후베이성을 제외한 24개 직할시 및 성급 도시 대부분에서 공장의 재가동이 예고됐다.

중국 관영 CCTV는 베이징의 경우 9일 0시 현재 173개 핵심기업 가운데 동인당, 북방화창 등 76곳이 조업을 재개했다고 집계됐고, 나머지 기업들은 10일 재가동에 들어가 조업 재개율이 95%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중국 현지 기업들이 공장 재가동을 미적거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중국 국무원을 비롯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 당국의 재가동 촉구에도 불구하고 전자상거래 1위 기업 알리바바, 배달업체 1위 메이투안은 오는 16일 이후로 재가동 일정을 미뤘다. 중국 내 최대 일자리 업체로 꼽히는 팍스콘은 허난성 정저우에 있는 애플 제품 조립공장을 돌리는 걸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직원들의 공장 복귀율은 30% 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폭스바겐(텐진), BMW(심양), 도요타(우한), 혼다(우한) 등 외국 자동차 기업들도 14~17일로 조업 재개를 연기했다.

헤이룽장성 등에서는 아예 지방정부가 나서서 공장 재가동을 2주 미루기로 했다. 헤이룽장성 무단장에 있는 타이어 제조업체는 최근 공장 문을 열었다가 직원 2명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는 바람에 다시 공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조업 재개에 따른 감염 확산 공포가 되레 커지는 상황이다.

또한 신종 코로나 사태가 중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얼마나 끌어내릴지도 온통 ‘안갯속’이다. 당초 5.9%를 예상했던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3가지 시나리오로 나눈 어정쩡한 전망치를 내놨다. ①사태가 곧 정점을 지나 몇 주 안에 진정되기 시작할 경우 4.8%, ②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경우 4.0%, ③억제하지 못할 경우 3.2%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이 11.1%(전망치)에서 9.1%로 추락한 점을 감안한 전망치다.


여기에다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의 크기를 두고 ‘우려’를 넘어 ‘공포’가 커지고 있다. 무디스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당초 2.8%에서 2.5%로 낮췄다. 모건스탠리 등도 사태 장기화 시 세계 경제성장률 0.3% 포인트 하락을 예측했다. 다만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위상이나 미치는 영향력이 급증해 사스 때와 단순비교하는 경제전망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발표한 ‘중국 경제의 글로벌 영향력 변화’ 보고서를 보면 세계 경제에서 중국 비중은 사스 발생 때인 2003년과 비교해 GDP 3.9배, 무역 규모 2.2배, 자본 이동 3.2배, 주식시장 규모 5.8배, 채권시장 규모 21배, 여행 지출 6.6배 등으로 껑충 뛰었다. 한국의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사스 때에 비해 중국의 규모가 이렇게 커진 줄 몰랐다. 하루가 다르게 신종 코로나에 따른 중국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걸 느낀다”면서 “향후 경제전망치를 시나리오별로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국의 조업 재개 속도, 신종 코로나 사태의 안정화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 웰스 파고에 따르면 중국 최종수요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의 경우 7.8%에 이른다. 대만(13.7%), 홍콩(9.8%), 말레이시아·싱가포르(각 8.7%)에 이어 5위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공급체인(GVC)을 보면 한국은 중국으로의 중간재 수출(435억 달러)과 중국산 중간재 수입(425억 달러)에서 모두 미국을 제치고 1위다. 중국과 중간재를 주고 받는 ‘공생관계’가 깊은 것이다.


그나마 중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지난 7일까지 3000명을 넘다 8일부터 2000명대로 감소하는 등 확산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는 점은 희망을 던져준다. 확진자 증가세 완화 흐름이 굳어진다면 ‘중국 내 공장 재가동 확대→글로벌 공급체인 강화→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선순환 고리를 작동시킬 수 있다.

당장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은 중국 인민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으로 쏠리고 있다. 인민은행은 이달 초 공개시장조작으로 1조2000억 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오는 20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와 대출우대금리(LPR) 인하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지준율·기준금리를 내려야 경기 부양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1~12일 각각 하원 및 상원에서 증언을 한다. 시장은 파월 의장이 신종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부양책도 주요 변수이기는 하지만 억압수요의 발현이 경기 반등에 중요하기 때문에 핵심은 신종 코로나 확진자의 감소”라고 진단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