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100년 ‘양당체제’ 깬 비주류 정당… 총선 1위 이변

입력 2020-02-10 17:30 수정 2020-02-10 17:38
메리 루 맥도널드(가운데) 아일랜드 신페인당 대표가 9일(현지시간) 더블린에서 총선 승리 소식에 양팔을 높여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일랜드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 제3당을 전전해온 좌파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Sinn Fein)당이 1905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일랜드에서 약 100년간 유지된 양당체제도 깨졌다. 양당 체제 하에서 이어져온 불평등과 정치 독점 체제에 지친 유권자들이 신페인당을 주류로 만들어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AFP통신은 9일(현지시간) 전날 치러진 아일랜드의 총선 개표 결과 신페인당이 24.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제1야당이던 공화(Fianna Fail)당이 22.2%로 뒤를 이었고, 집권당인 통일아일랜드(Fine Gael)당은 20.9%의 지지를 받아 3위로 떨어졌다. 아일랜드 공영 라디오방송 RTE뉴스에 따르면 하원 전체 의석 160석 중 1차 선호도로 뽑는 39석을 포함, 모두 78석의 의석이 확정된 10일 새벽 신페인당은 29석으로 선두를 달렸다. 공화당은 16석, 통일아일랜드당 14석, 녹색당 5석이었다.

신페인당 메리 루 맥도널드 대표는 “혁명이 일어났다”며 “더 이상 양당 체제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아일랜드는 통일아일랜드당과 공화당이 교대로 집권해온 양강 체제를 약 100년간 유지해왔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좌파 성향의 신페인당은 창당 이후 대부분 시간을 원내 진입도 하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머물렀다.

신페인당은 북아일랜드공화군군(IRA)의 정치조직으로 출발한 정당이다. 하지만 IRA는 과거 북아일랜드 내전 당시 테러·암살 등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IRA와 연계된 신페인당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1987년 총선에서 득표율 1.6%, 1989년 1.2%, 1992년 1.6% 등 2%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게리 애덤스 전 신페인당 대표가 움직이면서 변화가 생겼다.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산 역사인 애덤스 전 대표는 1998년 4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성금요일 협정’(벨파스트평화협정)을 맺어 수십년간 이어진 분쟁을 종식시켰다. 이후 1997년 총선에서 신페인당은 2.6%의 득표율을 얻으며 사상 첫 하원의원 배출에 성공했고, 존재감을 키워왔다. 애덤스 전 대표는 IRA와 거리가 먼 맥도널드 대표에게 당권을 넘기면서 정치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신페인당은 이번 총선에서 양당 체제를 깨뜨리겠다고 공언해왔다. 그간 양당체제 하에서 이뤄진 친기업정책, 긴축재정, 집값 상승 등을 비판하며 소외된 서민들을 챙기겠다고 유권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가디언은 “양당체제에 지친 아일랜드 유권자들이 신페인을 주류로 만들어줬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의 높은 임대료와 열악한 의료 인프라, 전통적인 정치 독점 체제 등에 대한 환멸이 신페인당의 약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페인당이 집권을 위한 연합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간 통일아일랜드당과 공화당은 신페인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다만 미홀 마틴 공화당 대표는 “우리의 정책과 원칙이 바뀌진 않았지만 국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해 연정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맥도날드 대표는 연정 구성을 위해 모든 당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