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체계 붕괴된 우한의 참상…유독 집중된 희생자, 왜?

입력 2020-02-10 17:04 수정 2020-02-10 17:19
지난 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가 격리포인트로 지정한 한 호텔 앞에 시 당국 관계자들이 앉아 있다. A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증(신종 코로나)으로 인한 사망자가 집중되고 있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참상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해당 지역의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희생을 막기에 역부족인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0일 우한에 거주 중인 주부 왕원쥔(33)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우한 의료체계의 난맥상을 고발했다. 왕원쥔에 따르면 우한시는 현재 신종 코로나 경증 의심 환자들을 가족들로부터 분리해 ‘격리 포인트’에 격리하고 있다. 자택에서의 감염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환자가 폭증하면서 이들을 수용할 병원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고육책으로 시내의 비즈니스호텔이나 학교 등을 격리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왕원쥔의 아버지 왕샹카이(61)와 숙부 왕샹유(63)는 지난달 29일 발열 증세를 보였다. 인근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병상이 없어 입원은 불가능했다. 이튿날 아침 숙부의 병환이 급격히 악화돼 호흡곤란 상태에 빠졌고 자력으로는 걸을 수도 없게 됐다. 왕원쥔이 거주 지역의 행정 담당자에게 이를 알리자 그는 격리 포인트 수용을 권유했다.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어 상태가 더 악화되면 입원 절차를 밟아주겠다는 취지였다.

담당자의 설명에 아버지와 숙부를 격리 포인트인 비즈니스호텔로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수용 당일 바로 문제가 생겼다. 그날 밤 왕원쥔에게 전화를 건 아버지는 “의사도 간호사도 없다. 산소통과 소독액은커녕 마스크조차 없다. 식사라고 나온 건 차갑게 굳은 밥 한 덩이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이튿날인 31일 숙부는 상태가 더 악화돼 숨을 거뒀다.

현재 우한에서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의 격리 포인트가 132곳 운영되고 있다. 당국은 원칙적으로 중증환자는 병원에, 경증환자와 감염의심자는 격리 포인트에 수용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부족한 실정이다. 증상이 발현돼 자택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만 2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이 중증환자를 치료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사실상 수많은 환자들이 방치되며 희생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가 우한의 병원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한대학의 중난병원 의료진이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발표한 ‘138개 사례의 신종 코로나 입원 환자의 임상 특징’ 논문에 따르면 환자 중 41%가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 병원 내 감염 비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잠복기라 신종 코로나 환자인 줄 몰랐던 이들이 격리되지 않은 채 엉뚱한 병동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병원 내 감염은 의료 종사자 감염으로 이어지면서 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미 CNN방송은 “많은 환자들과 의료 종사자들이 병원에서 감염됐다”며 “의료 및 간병 인력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