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치매 투병 60대 남성이 ‘치료적 사법’을 적용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살인혐의로 기소된 A씨(68)의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10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A씨가 입원한 경기도 한 병원을 직접 방문해 재판을 진행했다. 살인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이 병원에서 이뤄진 것은 국내 처음이다.
재판부는 “A씨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결과가 중대해 엄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범행 당시 A씨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고 그 상태가 악화해 현재 중증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A씨의 자녀들은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실형을 선고하기보다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 치매 전문병원에서 계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과 인간이 존엄 가치를 지닌다는 헌법과 조화를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12월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후 어린 손자들이 보는 가운데 아내를 여러 차례 때리고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은 범행 후 흉기를 숨긴 정황 등을 종합해 심신상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한 A씨는 구치소 수감 중 면회 온 딸에게 “엄마와 왜 함께 오지 않았냐”고 말하는 등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자녀들은 항소심에서 선처를 바라며 A씨의 치료를 적극 탄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치료적 사법을 위한 조치에는 적극 공감하면서도 현행 치료감호 절차를 통한 치매 치료는 시설의 한계로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지난해 9월 A씨에 대해 주거를 치매 전문병원으로 제한한 치료 목적의 보석을 직권으로 허가했다. 법원이 치매환자에게 ‘치료적 사법’을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것은 국내 처음이다.
A씨가 입원한 병원은 법원에 A씨의 조사 결과를 매주 한 차례 통지했고 자녀들은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왔다.
이날 병원에서 열린 선고에 앞서 검찰은 “A씨 가족들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검사로서 국가 기능과 국민들을 위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중요성을 알고 수긍하겠다”고 밝혔고 A씨측 변호인은 “치매 특성상 A씨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선처를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치료적 사법절차가 계속됨을 밝혔다. 재판부는 5년간의 보호관찰 동안 치매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명령을 위반 시 교도소에 수감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김현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