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한 스코세이지, 기립한 스타들…오스카 매료시킨 봉준호 화법

입력 2020-02-10 16:09 수정 2020-02-11 09:50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에서 상을 탄 봉준호 감독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무대에 4차례 올라 3차례 수상 소감을 말했다.

가장 주목받은 장면은 감독상을 탄 뒤 소감을 말할 때였다. 봉 감독은 먼저 “어렸을 때 가슴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통역되자 봉 감독은 곧바로 영어로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에게서 나왔다(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고 했다. 또 “학교에서 이 분 영화를 보며 공부했는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이 말을 들은 마틴 스코세이지는 잠시 울컥하는 표정을 짓더니 봉 감독에게 두 손을 모아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환하게 웃었다. 봉 감독이 팔을 뻗어 스코세이지를 가리키자 관객들이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스코세이지에게 보냈다.

봉 감독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역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향해서도 “여기 쿠엔틴 형님도 계신데 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봉 감독은 “(쿠엔틴 감독이) ‘기생충’을 미국 관객들이 잘 모를 때 우리 영화를 항상 리스트에 꼽고 좋아해줬다”며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말했다. 타란티노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 뒤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이며 봉 감독에게 축하를 전했다.


봉 감독은 또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감독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봉 감독의 이 말은 1974년 토브 후퍼 감독의 공포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은 이날 첫 번째로 받은 각본상을 탄 뒤에는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며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 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와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 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두 번째로 받은 국제장편영화상을 탄 뒤 수상 소감은 좀 더 길었다. 그는 “상의 이름이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바뀌었는데, 바뀐 이름으로 첫번째 상을 받게 돼 더더욱 기분이 좋다”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여기 와 있다”며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했다. 이에 객석에 있던 송강호 조여정 이선균 장혜진 이정은 박명훈 박소담 최우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에 선 봉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객석에서도 이들을 향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봉 감독은 “제 비전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바른손이앤에이와 CJ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로 “오늘 밤 한 잔 하겠다(I’m ready to drink tonight)”고 말했다.

그는 감독상을 탄 뒤에는 “감사하다. 내일 아침까지 마시겠다(Thank you. I will drink until next morning)”고 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