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영화 팬들 가운데 ‘봉준호’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을 테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할리우드 최대 축제 아카데미(오스카)의 최고상까지 석권했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명실상부한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봉준호(51) 감독의 아카데미 다관왕은 예견된 결과였다. 이미 전 세계 57개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았고 55개 해외영화상을 휩쓸었다. 프랑스 칸을 시작으로 호주 시드니, 스위스 로카르노,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수상 릴레이를 펼쳤고 지난해 10월 북미에 상륙하며 본격적으로 ‘트로피 수집’에 돌입했다. 각 지역 비평가상을 휩쓴 데 이어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 골든글로브 시상식, 미국배우조합상(SAG) 등에서 잇달아 수상 낭보를 전했다.
평단의 평가뿐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10일 북미 박스오피스 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북미 1060개 극장에서 개봉해 3547만 달러(약 423억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무려 1억6536달러(약 1973억원)를 벌어들였다. 해외에서 개봉한 역대 한국영화 중 최고 성적이다.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는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작품성에 대한 인정이었다면 아카데미는 상업적 가치까지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봉 감독 작품은 대중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성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예술과 상업, 로컬과 글로벌 등 모든 면에서 경계가 없다”면서 “그런 유연함이 거장을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영화시장에서 봉 감독의 지위가 급상승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봉준호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기술적·자본적으로 본인이 시도해보고 싶은 만큼 해볼 수 있는 바탕을 구축한 셈”이라며 “글로벌한 대형 영화사나 투자사, 뛰어난 스태프들과 일할 수 있는 개런티를 얻은 것이다. 봉 감독이 예산 1000억원짜리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벌써 기대가 된다”고 했다.
하재봉 영화평론가 역시 “앞으로 봉 감독은 할리우드 메인 시스템 안에서 훨씬 더 우월적인 입지를 갖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도 “봉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그 이상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성취를 거뒀다. 향후 최소 10년 동안은 세계무대에서 봉준호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더불어 한국영화 전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기회삼아 국내 영화계의 질적·양적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덧붙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종전보다 몇 단계는 높아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봉 감독 이후 앞으로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갈 젊은 감독들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계 전체에서 제2의 봉준호, 제3의 봉준호가 나오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 “영화계 생태계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와 규모의 영화들이 제작되고, 새로운 배우들도 발굴돼야 한다. 단순히 국내 마케팅에 한정된 기획영화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