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후 무대 뒤에서 털썩 주저앉은 모습이 포착됐다. 마지막으로 후보에 오른 작품상 시상이 끝나자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스카 시상식 이후, 트위터에는 ‘봉 감독의 작품상 수상 뒤 백스테이지(무대 뒤) 모습’이라며 사진 2장이 올라왔다. 첫 번째 사진에서 봉 감독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무대 뒤에서 얼굴을 푹 숙이고 손에 힘을 빼고선 주저앉아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 포착된 봉 감독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봉 감독 왼편에 최우식 배우가 있었는데 그는 이런 봉 감독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이날 봉 감독은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서부터 다소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은색 수트와 검은색 셔츠로 차려입은 봉 감독은 카메라 플래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긴장되는 상황에서 밝게 웃는 배우들과 달리 봉 감독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야 봉 감독은 오스카 트로피를 양손에 쥐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는 2개의 트로피가 서로 입맞춤을 하는 포즈를 취하기도, 트로피를 마이크처럼 쥐기도 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날 봉 감독은 각본상을 시작으로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4번이나 무대 위에 올랐다.
봉 감독은 각본상을 받은 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말했다.
국제영화상을 받고서는 “이 부문 이름이 올해부터 바뀌었다.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첫 번째 상을 받게 돼서 더더욱 의미가 깊다”며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바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배우와 모든 스태프가 와있다”며 배우들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 뒤 박수를 부탁했다. 마지막에 영어로 “오늘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낼 아침까지 말이다(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라고 말하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감독상을 받고서는 “좀 전에 국제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라며 “정말 감사하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추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브라보’를 외쳤다.
봉 감독은 “제가 마틴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상을 받을 줄 몰랐다. 제 영화를 아직 미국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셨던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도 계신데, 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고 외쳤다.
봉 감독은 끝으로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필립스(조커)나 샘 멘데스 등 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라며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오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해 큰 웃음을 끌어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