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 ‘텍사스 전기톱’이 등장한 이유

입력 2020-02-10 15:07 수정 2020-02-10 15:09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를 휩쓴 봉준호 감독의 입담은 영화만큼이나 거침없었다. 연이은 수상에 당황도 잠시, 여유로움을 되찾은 그의 소감 곳곳에서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묻어났다.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최고 영예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각본상 등 총 4개 부문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영화는 본래 편집상, 미술상 등 주요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었다.

이날 봉 감독의 재치가 가장 번뜩인 건 역시 시상식 말미에 이뤄진 감독상 수상 때였다. 이미 두 차례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그는 소감을 준비하지 못한 듯 난감해 했지만 “좀 전에 영화상 수상하고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재치있는 말로 운을 뗀 후 이야기를 유려하게 이어나갔다.

봉 감독은 “어렸을 때 내가 항상 가슴에 새긴 말이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지금 앞에 계신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하셨다”고 마틴 스코세지 감독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마틴 스코세지 감독은 흐뭇한 미소로 봉 감독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모든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손뼉을 치는 장관이 연출됐다. 봉 감독은 “학교에서 마틴 스코세지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는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정말 상을 받을 줄 몰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봉 감독은 “내 영화를 미국 관객과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내 영화를 리스트에 꽂고 좋아해 줬던 쿠엔틴 타란티노 형님께 감사하다. 정말 사랑한다”며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애정을 뽐냈다. 그러면서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샘 모두 멋진 감독이자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이라며 “이 트로피를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나눠주고 싶다. 고맙다. 내일 아침까지 술을 먹어야겠다”는 말로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영화제를 향한 묵직한 메시지도 이어졌다. 앞서 각본상을 받을 당시 “이 상이 한국의 첫 오스카”라는 소감을 전했던 봉 감독은 국제영화상을 받고 난 후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으로 바뀐 이름으로 상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가치에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