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무기 예산은 늘리고 해외원조 예산은 줄이고

입력 2020-02-10 14:34 수정 2020-02-10 14:37
2021년 회계연도 예산안서 핵무기 현대화를 위한 예산은 20% 증액
해외원조 예산은 21% 줄여
국방예산 전문가 “미국 핵무기 사용 기한 끝날 정도로 노후화돼”
로이터통신 “민주당 반대로 트럼프 예산안 의회 통과 가능성 낮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노후화된 미국의 핵무기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핵보안국의 예산을 올해보다 20%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미국의 해외 원조 예산은 21% 축소할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반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책정한 내년도 예산안이 미 의회를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로이터통신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조 8000억 달러(5700조원) 규모의 2021 회계연도 예산안을 마련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의 2021년 회계연도는 올해 10월 1일부터 내년 9월 30일까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체 국방비를 0.3% 소폭 증액한 7405억 달러(880조원)로 책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린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1년 예산안에서 국방부에 핵 운송 체계의 현대화를 위해 289억 달러(34조 3000억원)을 배정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핵무기 비축 현대화를 위해 미국 국가핵보안국의 예산도 198억 달러(23조 5000억원)을 책정했다. 국가핵보안국의 예산은 올해 예산안보다 20% 증액된 수치다.

악시오스는 증액된 핵 관련 예산이 핵탄두 기한 연장과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핵 비축 시스템을 위한 투자, 노후 핵시설 개선, 새로운 핵탄두 개발을 위한 능력 복원 등에 쓰일 것이라고 취재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의 국방 예산전문가 매킨지 이글런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상에서 발사되는 핵무기, 핵잠수함, 전략 항공기 등 핵무기의 3대 핵심요소의 현대화를 미뤄왔다”면서 “이들 시스템은 지금 노후화돼 사용 기한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현대화에 나서는 것도 변수다. 그러나 미국의 노후화된 핵탄두와 미사일을 현대화하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며 시간적으로도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핵 예산 증액을 승인할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인식 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핵무기 군비 통제에 더 관심이 많고, 공화당은 핵무기 현대화를 지지하고 있다. 또 핵무기 개선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핵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는 반면, 공화당은 핵 전쟁 가능성을 줄인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의 해외 원조 예산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2020년 회계연도 미국의 해외 원조 예산은 557억 달러(66조 3300억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예산안에서 이를 441억 달러(52조 5100억원)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원조를 줄이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색채를 더욱 강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주둔한 한국·일본·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력을 가하면서 미국의 해외 원조 예산은 크게 축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예산안에서도 해외 원조를 줄이려고 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대선이 있는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집행 청사진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역시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 논란을 야기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예산 3억 9100만 달러(약 4600억원)는 올해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러시아와 벌이는 무역전쟁에 맞서기 위한 예산은 크게 늘렸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증가하는 경제적 영향력에 맞서 설립된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IDFC)의 예산을 1억 5000만 달러(1780억원)에서 7억 달러(8300억원)로 증액했다. IDFC는 민간부문과 협력해 개발도상국에 대출을 해주는 개발은행 역할을 하는 기구다. 미국은 IDFC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빚의 덫’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