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아카데미 4관왕… 모두가 인정한 ‘기생충’ 그리고 봉준호

입력 2020-02-10 14:17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디 오스카 고우즈 투 ‘패러사이트’(The Oscars goes to ‘Parasite’)”

무려 네 차례나 호명됐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객석에서는 열화와 같은 환호가 터졌다. 그리고 한참동안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모두가 그 상의 주인을 인정하고, 축하한다는 의미였다. 마틴 스콜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감독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축하를 보냈다.

이윽고 아카데미(오스카)의 벽이 무너졌다. 봉준호(51)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무려 4관왕을 거머쥐었다.

자국 위주의 보수적인 아카데미 성향을 고려했을 때 다소 파격적인 결과다.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사상 처음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차지한 영화는 미국 델버트 맨 감독의 로맨스 영화 ‘마티’(1955)가 유일했다. 아시아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것 또한 중국 ‘와호장룡’(2000)의 이안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 팀. 신화연합뉴스

봉 감독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감독상을 받고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스콜세이지의 말을 영화 공부할 때 늘 가슴이 새겼다. 그와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영광인데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며 공을 돌렸다. 객석에 자리한 스콜세이지는 멋쩍은 듯 웃으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국제영화상 수상 소감에서는 “올해부터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첫 번째 상을 받게 돼 기쁘다.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작업한 멋진 배우와 스태프들을 소개한다”면서 동석한 배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역대 각본상을 수상한 외국어 영화는 1946년 ‘마리 루이스’(감독 리처드 쉬웨이저 감독·스위스)가 있었지만,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다. 봉 감독은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지만 이 상은 한국에 특별한 일”이라며 감격해했다. 공동 수상자인 한진원 작가는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 나의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영화인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