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감독서 세계적 거장 반열에 우뚝… 봉준호가 걸어온 길

입력 2020-02-10 13:33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51) 감독이 마침내 아카데미(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할리우드 최대 축제 아카데미 최고상까지 석권했다. 그야말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명실상부 거장 반열에 오른 것이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건 물론 수상까지 일궈낸 건 101년 역사상 처음이다. 봉 감독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고,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스스로 발전시킨 모든 것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봉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아버지 봉상균씨가 영남대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를 지낸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구보 박태원의 딸 박소영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은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창작자’라고 봐야 한다”며 “어릴 적부터 굉장히 많은 문화적 혜택을 받았다. 집안의 영향도 있었고 본인의 노력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봉 감독은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통해 영화에 입문했다. 1994년 발표한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들’과 ‘지리멸렬’이 그해 밴쿠버와 홍콩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첫 장편 연출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통해서는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플란다스의 개’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치밀한 연출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탄탄한 스토리에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담아낸 ‘살인의 추억’(2003)으로 스타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송강호와는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기생충’(2019)까지 17년간 4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봉 감독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호탄이 된 ‘괴물’로 ‘천만 감독’에 등극하며 명실공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감독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는 혁신적인 시각효과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섬세한 연출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이 출연한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활동 무대를 넓혔고, 제작비 580억원이 투입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2017)로 새로운 플랫폼을 경험했다. 두 편 연달아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봉 감독이 한국으로 돌아와 ‘작은 영화’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작품이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으로 이룬 성취는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57개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았고 55개 해외영화상을 휩쓸었다. 칸을 시작으로 호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 수상 릴레이를 펼쳤고, 지난해 10월 할리우드에 상륙하면서 수상 행진에 가속을 붙였다. 각 지역 비평가상을 휩쓴 데 이어 크리틱스초이스 어워즈,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SAG) 등에서 잇달아 수상 낭보를 전했다.

이윽고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라 그 중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쥐었다. 후보 지명 당시 봉 감독은 할리우드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동안 서구 관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거장들이 있다. 한국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재봉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은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김기덕이나 홍상수 감독과는 다른 노선을 걸었다. 상업영화 시스템 안에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두 줄 타기를 시도해 왔다”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확산시키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영화 속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