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리원량 사망에 ‘언론의 자유 보장하라’ 분노…시진핑 체제 위기

입력 2020-02-09 17:29
의사 리원량의 입을 막은 정부를 비판하는 삽화.트위터캡처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처음으로 경고했던 했던 의사 리원량이 끝내 숨져 중국 전경이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중국 학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공개 요구하며 잇따라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못하겠다”며 노(NO)라고 말하자는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리원량의 죽음으로 시진핑 체제가 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우한 화중사범대학의 탕이밍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공개서한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이어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원량을 포함한 의사 8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을 경고했다가 괴담 유포자로 몰려 경찰에 불려가 훈계서에 사인을 하는 등 처벌을 받았다.

학자들은 중국 헌법을 인용해 “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며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집단의 이익이나 다른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원량의 죽음이 알려진 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 글은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으나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다.

베이징대 법학 교수인 장첸판은 리원량 사망일인 2월 6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며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침묵을 지킨다면 죽음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체제에 맞서 ‘노’(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첸훙 우한대학 법학 교수는 “중국의 여론은 지금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과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천안문 사태와 같은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한 후야오방의 죽음은 89년 6월 천안문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못하겠다'고 거부하는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는 중국 네티즌들.트위터캡처

리원량이 숨진 7일에는 우한 시내에서 저녁 9시 전후로 10분 동안 일제히 소등을 했다가 다시 불빛을 밝히고,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내부고발자)를 기리며 호루라기를 부는 시위가 벌어졌다.

트위터에는 7일 저녁 8시 55분에 일제히 불을 끄고 휴대폰 불빛과 손전등을 켜 하늘로 비추고, 9시에 다시 전등을 켜고 호루라기를 5분간 부는 시위를 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실제 그 시간대 우한 시내를 찍은 영상을 보면 아파트 단지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함성을 지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리원량의 흉상을 만드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산시성 시안 출신의 양쉬안(38)이란 조각가가 8시간 걸려 ‘내부고발자’ 리원량의 흉상을 만들었다면서 제작 과정을 담아 웨이보에 올린 영상이다.

양씨는 “리원량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 아팠다”며 “조각 작품을 통해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이 흉상을 시청 앞이나 중앙 정부 뜰에 세워놓고 그의 노력을 헛되게 했던 사람들이 보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리원량이 죽었는데 사과 한마디 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또 다른 영상에는 리원량이 ‘우한에서 사스가 출현했다“는 글을 올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에 불려가 훈계서에 사인한 것을 빗대 ‘不能(못하겠다). 不明白(모르겠다)’라고 거부하는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는 동영상도 퍼지고 있다.

괴담 유포자로 지목된 리원량은 지난달 초 경찰서에서 ‘앞으로 위법행위를 중지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항목에 리원량은 ‘能’(할 수 있다)이라고 적었다.

또 ‘계속 위법행위를 하면 법률적 제제를 받는다. 알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明白(알겠다)”라고 썼다. 이에 여성들이 진실을 틀어막는 정부를 비판하며 ‘不能. 不明白’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릴레이 출연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트위터에는 “우한인들이어 일어나 저항하라” “이제는 행동할 때다”라는 중국 네티즌들의 과격한 글도 다수 눈에 띄었다.

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폭로한 리원량은 자신도 감염돼 7일 새벽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 매체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6일 밤 전하기도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