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반격?…우리은행 ‘비번 도용’ 사건도 제재심 올린다

입력 2020-02-09 16:49 수정 2020-02-09 17:31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 직원들의 고객 휴면계좌 비밀번호 도용사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불거진 금감원과 우리은행 간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지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의 반격’이라는 얘기마저 흘러 나온다. 우리금융 이사회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지지하면서 강행 흐름을 잡자 금감원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는 해석이다. 손 회장은 DLF 제재심에서 ‘연임 불가’에 해당하는 중징계(문책경고)를 받았었다.

일부에선 ‘꼼수’라고 지적한다. 1년 넘게 묵혀뒀던 사안을 제재심에 불쑥 올리기로 한 것은 ‘표적 제재’ ‘뒷북 제재’라고 비판한다.

9일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경영실태평가의 정보기술(IT) 부문 검사결과 조치안을 조만간 제재심에 상정할 예정이다. 해당 조치안은 2018년 10월에 이뤄졌다. 우리은행은 그해 7월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고객의 인터넷·모바일뱅킹 휴면계좌 비밀번호를 바꿔 활성계좌로 전환한 사실을 자체 적발했다. 비밀번호 변경으로 휴면계좌가 활성화되면 신규 고객 유치실적으로 잡힌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 우리은행은 이런 내용을 금감원에 보고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시 4만여개의 의심 사례를 조사해 2만3000여건을 무단 도용 사례로 적발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제재심이 열리는 시점이다. 우리은행이 해당 사건을 금감원에 보고하고 약 14개월 동안 관련 제재심은 열리지 않았다. 피해를 당한 휴면계좌 고객이 1년 넘게 비밀번호 도용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심은 검사가 종료되면 이뤄지는 당연한 절차다. 이번 달에는 제재심에 다른 안건들이 많아서 다음 달쯤 열리는 제재심에 해당 안건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측은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해당 사건은 정보 유출이나 금전적 피해 사실이 없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해당 건에 대한 실적을 차감하고, 시스템을 전면 개선하는 등 발 빠르게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 시선은 다음 달 24일로 예정된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쏠리고 있다. 손 회장과 우리금융 측은 주총에서 연임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휴면계좌 비밀번호 도용 제재심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박재찬 최지웅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