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발견 사실을 처음으로 알린 의사 리원량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뜨거운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진실을 알리려다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렸던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그의 헌신적인 삶을 기리는 수많은 영상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그를 흉상을 만들어 고마움을 대신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각에선 정부에 표현이 자유를 요구하고, 노(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불복종 운동 조짐까지 보인다.
9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리원량의 흉상을 만드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산시성 시안 출신의 양쉬안(38)이란 조각가가 8시간 걸려 ‘내부고발자’ 리원량의 흉상을 만들었다면서 제작 과정을 담아 웨이보에 올린 영상이다.
양씨는 “리원량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 아팠다”며 “나는 의료 현장에 갈 수 없지만, 조각 작품을 통해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이 흉상을 시청 앞이나 중앙 정부 뜰에 세워놓고 그의 노력을 헛되게 했던 사람들이 보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리원량이 죽었는데 사과 한마디 없다” “우리는 영원히 그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선생, 존경합니다”라는 댓글을 수없이 달았다.
리원량이 숨진 7일에는 우한 시내에서 저녁 9시 전후로 10분 동안 일제히 소등을 했다가 다시 불빛을 밝히고,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내부고발자)를 기리며 호루라기를 부는 시위가 벌어졌다.
트위터에는 7일 저녁 8시 55분에 일제히 불을 끄고 휴대폰 불빛과 손전등을 켜 하늘로 비추고, 9시에 다시 전등을 켜고 호루라기를 5분간 부는 시위를 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실제 그 시간대 우한 시내를 찍은 영상을 보면 아파트 단지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함성을 지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졌다.
구급대원 같은 복장을 한 남성 2명은 같은 시각 리원량이 숨진 병원 출입구에 꽃다발을 헌화하고, 그 자리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동영상도 트위터에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손전등과 호루라기 시위를 가리켜 “이는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추도 의식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영상에는 리원량이 ‘우한에서 사스가 출현했다“는 글을 올렸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에 불려가 훈계서에 사인한 것을 빗대 ‘不能(못하겠다). 不明白(모르겠다)’라는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는 동영상도 퍼지고 있다.
괴담 유포자로 지목된 리원량은 지난달 초 경찰서에서 ‘앞으로 위법행위를 중지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항목에 리원량은 ‘能’(할 수 있다)이라고 적었다.
또 ‘계속 위법행위를 하면 법률적 제제를 받는다. 알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明白(알겠다)”라고 썼다. 이에 여성들이 진실을 틀어막는 정부를 비판하며 ‘不能. 不明白’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릴레이 출연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한 것이다.
트위터에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삽입곡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의 가사나 “건강한 사회에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선 안 된다”는 리원량의 말이 속속 올라왔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는 곧바로 웨이보에서 검열됐다.
트위터에는 “우한인들이어 일어나 저항하라” “이제는 행동할 때다”라는 중국 네티즌들의 과격한 글도 다수 눈에 띄었다.
신종 코로나 발생 사실을 폭로한 리원량은 지난 1일 “오늘 핵산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며 자신의 감염 사실을 전하는 마지막 짧은 글을 남긴 뒤 7일 새벽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중국 매체에서는 당초 6일 오후 9시 30분에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사망 시각이 7일 오전 2시 58분으로 바뀌었다.
네티즌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우리를 보호해주려 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2020년 가장 밝은 별이 졌다” “천국에는 훈계 조치가 없기를. 편히 가세요. 영웅!”이란 댓글을 남겼다.
국가감찰위원회는 민심이 들끓자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해 의사 리원량과 관련된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환구시보는 ‘의사 리원량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의 생전 경고가 중시되지 않았고 그는 오히려 훈계받았다. 그는 전염병이 폭발하는 시기에 전쟁터와 같은 병원에서 전사처럼 싸우다 순직했다”며 리원량을 ‘영웅’으로 칭했다.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30일 사스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증세가 있는 환자 보고서를 입수해 대학 동창들의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 이후 경찰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8명을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공지했다. 리원량을 비롯한 8명은 모두 의사였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