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5% 이상 대량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가 3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량 지분을 보유할 때 부과되는 공시 의무(일명 5% 룰)이 완화되면서 국민연금의 ‘입김’이 세질지 주목된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전체 주식 지분의 5% 이상을 보유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총 313개였다. 2018년 말(292곳) 이후 1년 1개월 만에 21개(7.2%) 늘었다. 이 중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10% 이상인 상장사는 96개로, 같은 기간에 비해 16개(20.0%) 증가했다.
이에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 활동(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 및 범위 등을 명시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이로써 국민연금은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 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을 상대로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 해임과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완화된 ‘5% 룰’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날개를 달아줬다. 5% 룰은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대량으로 보유하게 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 목적 및 변동사항을 상세히 보고·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때 주식 등의 보유 목적이 ‘경영권 영향 목적’이 아닌 ‘단순 투자 목적’일 경우, 보고 기한 연장 및 약식보고가 허용된다. 종전까지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활동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해당 규정이 주주들의 적극적 주주 활동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그러나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배당 관련 주주 활동이나 단순한 의견 표명, 회사 및 임원의 위법 행위에 대응하는 해임 청구 등은 ‘경영권 영향 목적’ 활동에서 제외됐다.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공개된 원칙대로 진행하는 경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역시 가능하게 됐다. 이같은 활동은 ‘단순 투자 목적’이 아니라 이번에 신설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분류돼 월별 약식 보고만 하면 된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국내 상장사 56곳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 목적’에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고 최근 공시했다.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위법 행위를 한 이사에 대한 해임을 청구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