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2020 아카데미 시상식이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신드롬급 인기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수상을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생충’은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각본·편집·미술·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한국 최초’ 수식어를 달고 수상 행진을 달리고 있다. 분위기를 이어 ‘기생충’이 아카데미 수상까지 성공하면 유럽과 북미의 최고 권위상을 모두 휩쓸게 된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출품을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에 지명된 것은 이번 ‘기생충’이 처음이다. 수상으로 이어진다면 101년 한국 영화 역사를 다시 쓰게 되고, 92년 아카데미상 역사도 바뀐다.
영화계에서는 ‘기생충’의 국제영화상 수상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다.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을 점치는 시선도 많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쟁작인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버티고 있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다.
‘1917’은 작품상 뿐만 아니라 감독·각본·미술·촬영·분장·음악·음향 편집·음향믹싱·시각효과상 등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질러야했던 두 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돼 전장의 참상을 체험하게 한다는 평가와 함께 역대 전쟁 영화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1917’이 ‘기생충’이 넘어야할 산인 이유는 또 있다. ‘1917’은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세운 제작사 엠블린 파트너스가 제작했다. 미국 영화라는 점과 할리우드가 선호하는 전쟁 영화라는 점도 한 몫한다. 또 아카데미 전초전 격인 미국제작자조합(PGA) 작품상과, 감독조합(DGA) 감독상을 받아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기생충’도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배우조합(SAG)상 최고상을 받았고 작가조합(WGA)상, 편집자협회(ACE)상, 미술감독조합(ADG)상을 휩쓸었기 때문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외신 역시 ‘기생충’의 수상을 밝게 전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917’이 작품상으로 유력하지만 ‘기생충’과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영화평론가 카일 뷰캐넌은 “3년 전 아카데미에서 슬럼가의 흑인 이야기를 다룬 ‘문라이트’가 백인 예술가들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꺾었던 것처럼 ‘기생충’이 ‘1917’을 누르고 예상 밖의 작품상 수상을 해낼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기생충’이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할 경우 '백일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감독상을 두고도 샘 멘데스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2파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뷰캐넌은 “‘1917’이 작품상을 받는다면 감독상은 봉준호 감독이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편집상과 미술상에서도 ‘기생충’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뷰캐넌은 “‘기생충’에서 여러 등장인물을 따라 점점 긴장감을 더하는 능수능란한 시퀀스에 주목한다”며 “편집상 수상이 곧 작품상 수상으로 이어질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초현대적 구조의 주택을 선보였다”며 “미술상이 유력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수상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유력 언론인 라 레푸블리카도 8일 보도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기대했다. 매체는 “전통적으로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동시 지명될 경우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다소 낮아진다”면서도 “전통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다면 비영어권 영화로는 역사상 첫 수상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길 것”이라고 했다.
국내 영화 전문가들은 ‘기생충’이 2개 혹은 3개 정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 이외에 작품상이나 감독상 중 하나, 각본·미술·편집상 가운데 하나 정도를 받을 것”이라고 봤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