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상을 한층 풍성하게 하는 건 여성 영화들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여성들이 다채로운 목소리를 낸다. 특히 여우주연상(시얼샤 로넌)과 여우조연상(플로렌스 퓨)에 모두 노미네이트된 ‘작은 아씨들’과 강력한 여우주연상(르네 젤위거) 후보인 ‘주디’를 눈여겨볼 만하다.
제목부터 익숙한 ‘작은 아씨들’은 고전 명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은 1868년 소설로 출간돼 1933년부터 여러 차례 영화화돼 왔다. 오는 12일 국내에 공개되는 2020년판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와 이웃집 소년(티모시 샬라메)의 성장담을 그린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이어받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연출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영화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 미국 뉴욕에서 글을 쓰며 근근이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 조는 동생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집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과거 기억들이 펼쳐진다. 첫째 메그(엠마 왓슨)와 조, 셋째 베스(일라이자 스캔런),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각자 배우와 작가, 음악가, 화가를 꿈꾸던 명랑한 소녀들이었다.
소녀들이 꿈을 이루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여자는 결혼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실제로 여성은 책 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도 없다. 울분에 찬 조의 외침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여자도 감정뿐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죠.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
영화에 담긴 진취적 메시지는 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2018)로 단번에 연출 역량을 인정받은 그레타 거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어릴 적부터 원작을 수없이 많이 읽었다는 그는 이 작품을 본인 정체성의 일부로 여겨왔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담아낸 풍경이나 의상, 음악도 빼어나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주디’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의 도로시 역으로 아역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미국 배우 겸 가수 주디 갈랜드(1922~1969)의 생애 끝자락을 조명한 전기 영화이다. 절정의 인기를 누린 스타의 화려한 삶은 껍데기뿐이었다. 유년기부터 다이어트약과 수면제를 달고 산 그는 여러 약물에 중독됐고, 4번의 이혼과 5번의 결혼을 거치며 심신이 피폐해졌다.
르네 젤위거는 주디 그 자체가 된 듯한 열연을 펼친다.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내던져져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 그 끝에 남은 허무와 공허를 순간순간의 표정에 담아낸다.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무대를 사랑하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꿨던 주디의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은 진한 여운을 안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부른 ‘오즈의 마법사’ OST ‘오버 더 레인보우’를 담담히 읊조리는 마지막 런던 콘서트 장면이 압권이다. “이건 희망에 관한 얘기예요. 누구나 희망은 필요하죠.”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곡을 소개하는 주디의 얼굴, 그 잔상이 길다. 젤위거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등 여우주연상 15관왕을 달성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