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냐, 관치금융이냐…키코·DLF 둘러싼 금감원 책임론

입력 2020-02-06 17:39 수정 2020-02-06 20:03

고위험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둘러싼 제재와 배상이 금융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금융권에 대한 감독 당국의 제재는 환영할 만하다. 다만 ‘금융감독원의 책임’을 두고 온도 차를 노출한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 사태를 놓고 금감원 입김이 너무 세다는 비판도 터져 나온다.

환율 연계형 파생상품인 키코의 배상 문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환헤지 목적으로 키코에 투자했던 919개 기업들은 약 3조원의 피해를 봤다. 지난해 12월 금감원은 키코 분쟁조정안을 제시하고 키코 판매은행들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키코 분쟁조정안을 수락한 은행은 우리은행 1곳뿐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불완전판매 피해기업 2곳에 42억원을 배상하기로 결정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7일까지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라고 제시했었다. 송평순 금감원 분조위 팀장은 “아직 공식적인 기한 연장 요청은 없지만, 시한을 다시 연장할 수도 있다. 다만 무제한 연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대한 은행들을 설득해 원활한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은행이 분쟁조정안 수용을 거부해도 금감원은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분쟁조정안을 받아든 은행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선례’를 남기는 게 꺼림칙하다. 금감원이 분쟁조정 결정을 내린 일부 기업 배상을 마치면 나머지 기업들과 자율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 배상 대상 기업은 147곳으로 늘어난다. 배상 금액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 은행들로선 주주들의 ‘눈치’도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최고경영자(CEO) 연임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주주의 자산으로 배상금을 지불하면 ‘경영진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DLF가 금융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상대로 판매했다고 한다면, 키코는 각 기업의 최고재무경영자(CFO)가 관여한 게 대부분이다. 은행 입장에선 불완전판매라는 지적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키코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DLF 사태에 따른 은행권 제재와 맞물려 ‘금감원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감시·감독 책임이 있는 금감원에서 DLF 불완전 판매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사실상 방조하다가 사태가 커지자 은행에 책임을 전가하고 제재를 가하는 게 과연 바람직하냐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최근 DLF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본감사 착수 결정에 참고하기 위해 피감기관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감사가 이뤄지면 DLF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책임은 없는지, 금융회사 제재 등은 적절했는지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5년간 실시된 금융소비자 보호정책 등을 감사한 내용을 담은 ‘금융소비자 보호시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정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11월 감사원에 금감원, 금융위원회를 대상으로 하는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시민단체들은 DLF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감독기관의 부실 감독을 꼽았다.

최지웅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