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유일 반란표, 롬니는 왜 트럼프 탄핵에 투표했나

입력 2020-02-06 17:34 수정 2020-02-06 20:23
밋 롬니 상원의원이 공화당 내 유일한 트럼프 탄핵 찬성 표를 던지기 직전 비장한 표정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밋 롬니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상원 탄핵심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단 하나의 반란표였지만 트럼프 진영에서는 경멸과 위협이, 반(反) 트럼프 진영에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롬니는 5일(현지시간) 탄핵 표결 직전 기자회견을 자처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오염시키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취임 선서 위반 행위”라며 “헌법에 대한 끔찍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등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두 가지 혐의 중 권력 남용에 찬성표를 던졌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공정한 정의를 행할 것을 맹세했다”며 “내 신념은, 내가 누군지를 말해주는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한 뒤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장내는 순간 숙연해졌다. 그는 “탄핵 소추안에 드러난 혐의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며 “제시된 증거를 무시하고, 당파적 목표를 위해 나의 맹세와 헌법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역사의 질책과 내 양심의 비난이 나를 괴롭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에 앞서 미 역사상 하원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건 1868년 앤드류 존슨과 1999년 빌 클린턴 재임 때였다. 두 대통령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고,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하원에서 올라온 탄핵안에 합심해서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 표결로 롬니는 미 역사상 최초로 소속당 대통령에게 탄핵 찬성표를 던진 상원의원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한때 자신을 공화당과 동일시했던 남자가 당에 반기를 들었다.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롬니와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내 오랜 정치적 앙숙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자 롬니는 당내 반 트럼프 진영의 선봉에 섰다. 당시 공화당 주류 세력이자 점잖은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에게 트럼프의 등장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트럼프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정의하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역시 “거만한 멍청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에 대한 감정적 앙금 탓에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는 시선을 의식한 듯 롬니는 과거의 악연 탓에 찬성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롬니의 탄핵 찬성 소식이 전해지자 트럼프 부자가 동시에 그를 조롱하며 뒤끝을 보였다. 트럼프의 첫째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위터를 통해 “롬니는 2012년 민주당을 이기기엔 너무 약했기에 이제는 민주당에 합류하고 있다”며 그를 당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롬니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한 사실을 비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롬니를 ‘민주당의 비밀자산’으로 묘사하는 1분짜리 조롱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