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번 모녀 확진자가 잇따라 나온 광주21세기병원은 이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병원에 격리돼있는 환자들은 “방치됐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고, 병원 외부에는 병원장 명의로 “죄송하다”는 내용의 입장문이 붙었다. 제때 격리되지 못했던 16·18번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340명으로 파악되면서 21세기병원은 신종 코로나 발생지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지난달 27일 16번 확진자가 광주21세기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병원은 “태국 여행 중 공항 출국장에서 상태 안 좋은 환자와 접촉이 의심되고,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돼 전원한다”는 비교적 자세한 소견을 담은 진료의뢰서와 함께 환자를 전남대병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병원과 보건소는 중국이 아닌 태국을 여행했다는 이유를 들어 진단 검사를 무시했다.
16번 확진자가 처음 진료를 받은 지난달 27일부터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 4일까지의 관리 공백이 발생하면서 추가 접촉자는 무분별하게 확산됐다. 이 때문에 21세기병원은 정확히 초진을 했음에도 뜻하지 않게 신종 코로나 발생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정작 21세기병원은 16번 환자의 초기 진단을 제대로 하고, 확진자 발표가 난 뒤에는 즉각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고 임시 폐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소식을 통보받은 게 아니라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병원 측이 자체 대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은 애꿎은 21세기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측은 6일 대표원장 이름으로 입장문을 내고 “먼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내원하셨던 환자 및 보호자, 방문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대상자의 감염 가능성을 고려해 입원 초기부터 상급 병실(2인실) 이용 및 지속적인 감시를 취하였으나 결국 작금의 사태를 막지 못하여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6번) 확진자가 27일 내원했을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증세가 의심된다고 보건소에 연락했으나 중국 여행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사항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전남대병원 전원을 위해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전달했으나 마찬가지로 같은 답변을 받았다”고 16번 환자의 초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 측은 병원 내 전 직원과 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해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며 “위험군으로 판단되는 직원들을 격리 조치하는 등 병동 내 감염과 지역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민혁 대표원장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는 동시에 환자분들이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지고 보살피겠다”며 “우리 병원을 사랑해주셨던 환자·보호자·방문객 등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날 오전 병원 외부 현관문에 붙였던 입장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곧바로 떼어냈다.
한편 이 병원에 격리돼있는 환자들은 보건당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16번 확진자와 같은 층을 썼던 23명의 고위험군 환자들을 격리해놓고도 관리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당국은 이들을 1인 1실로 격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곳에 격리된 환자 A씨(57)에 따르면 실제로 1인 격리 조치는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격리자 대부분이 기존에 머물고 있던 다인실 등 병실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병원 측은 환자를 1인실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황을 통제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 1인실로 옮기지 못한다고 들었다”며 “병실 간 출입이나 환자 간 접촉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한 명도 없어 격리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있다”고 말했다.
다인실의 경우 샤워실과 화장실이 따로 없어 공동 샤워장과 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다. 심지어 마실 물까지 떨어져 대부분은 복도 한쪽에 놓인 공동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들은 배달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데, 배달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은 방역복을 착용하지 않은 채 병원을 출입하고 있었다.
또 병원 청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화장실은 휴지가 널려있고, 휴지통에 든 쓰레기도 제때 처리되지 않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이 계속되고 있다고 A씨는 전했다. 화장지나 치약, 세면도구 등 생필품마저 보급이 안 되면서 격리 환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A씨는 “감염병으로 격리를 했으면 적어도 생필품을 제대로 보급해주고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환자가 아닌 사람을 여기에 붙잡아 놓고 있다가 되레 병에 걸리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보건당국은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자 뒤늦게 광산구 공무원을 21세기병원에 투입해 환자들을 관리토록 했다. 또 자원봉사를 신청한 20여명은 저위험군 환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소방학교 생활관(기숙사)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