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발언 기대했던 ‘볼턴’ 증언 무산이 결정타
갈라진 민심…탄핵 찬성이 여론 압도 못해
면죄부 받은 트럼프, 재선 행보에 주력할 듯
민주당, ‘우크라 스캔들’이 대선서도 트럼프 발목 잡을 것 기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의 올가미를 완전히 벗었다. 미국 상원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24일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탄핵 조사 개시를 전격적으로 선언하며 탄핵 정국이 열렸다. 그러나 탄핵 드라마는 134일 만에 반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을 맺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상원 탄핵심리 증언이 무산된 것은 결정타 역할을 했다.
미국 여론도 지지 정당에 따라 확연히 갈랐다. 탄핵 찬성 의견이 탄핵 반대보다 대체적으로 높았으나 그 격차는 1∼6%포인트에 불과했다. 탄핵 찬성이 여론을 압도하지 못한 것도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탄핵 부결’ 예견이 현실화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8일 자신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탄핵 불씨를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하원의 탄핵을 받은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주당은 예상대로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내쫓기 위해선 상원 전체의원(100명) 중 3분의 2 이상인 6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화당 53명, 민주당 45명,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이 2명인 상황에서 탄핵 가결이 힘들 것이라는 예견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현실화됐다.
민주당에게도 마지막 실낱같은 기회는 있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상원 탄핵심리에 증언으로 나와 폭탄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미 상원은 지난달 31일 탄핵심리에 볼턴 전 보좌관을 비롯한 새로운 증인들을 부를지에 대한 표결을 실시했다. 그러나 부결됐다. 볼턴의 증인 채택이 무산됐을 때 탄핵 게임은 사실상 끝났다.
‘정적 뒷조사’ 요구했던 ‘우크라이나 스캔들’
미국을 뒤흔들었던 트럼프 탄핵 사태는 익명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30분 동안 전화통화를 가졌다.
10여명의 백악관 당국자들이 이 통화를 듣고 기록했다. 이 중에는 내부 고발자도 있었다. 내부 고발자는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금 3억 9100만 달러(약 4600억원)와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뒷조사를 연계했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검찰이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군사지원을 보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주장이었다.
내부 고발자는 ‘정보기관 내부 고발자 보호법’에 따라 지난해 8월 12일 미 정보기관 감찰관실(ICIG)에 익명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물밑에서 떠돌던 의혹은 한 달 뒤인 9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트럼프 “쿼드 프로 쿼(대가성 거래)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국면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했던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는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같은 우리 국민이 우크라이나에서 부패를 저지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부자가 우크라이나에서 비리와 연관됐음을 시사하면서 역공을 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터진 이후 “‘퀴드 프로 쿼’(대가성 거래)는 없었다”고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지원과 바이든 부자 뒷조사를 연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로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11일 보류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집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벼랑으로 몰 ‘스모킹 건’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탄핵 추진을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해 9월 25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과 관련해 편집본 형태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신이 (미국) 법무장관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이라면서도 “당신(젤렌스키 대통령)이 조사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민주당은 “뒷조사 외압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지만 백악관은 “대가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녹취록이 공개됐으나 말씨름만 반복된 것이다.
면죄부 받은 트럼프, 민주당에 역공 가하며 대선 전력
민주당은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뒤에도 상원에 탄핵안을 넘기는 것을 미뤘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일찍 부결되는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민주당은 자신감을 잃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지난달 15일에야 탄핵소추안을 상원에 이송했다.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한지 28일 만이었다. 상원의 탄핵심리가 진행됐지만 탄핵 부결 쪽으로 판세는 이미 기울었다.
상원에서 5일 이뤄진 탄핵 표결에서 상원의원들은 소속 정당에 따라 표를 던졌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밋 롬니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받았던 두 가지 혐의 중 권력남용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 표를 던진 것이 유일한 이탈표였다.
탄핵 굴레를 완전히 벗은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에 역공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올해 11월 대선 준비에 더욱 속력을 낼 것을 예상된다.
민주당은 당분간 정치적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탄핵에는 실패했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 상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