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받는 학생들에게 출연료 왜 주나”
경희대 무용과 출신의 20대 제보자 2명은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경희대 무용과 윤미라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딴 ‘윤미라무용단’을 운영하면서 출연료 미지급, 비용 전가, 특강 의무수강 등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불합리한 관행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윤미라무용단의 정식 무용수는 경희대 무용대학원생들로 이루어져있지만 윤교수는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통상 학부생 10~20명을 차출해 1년간 보조 무용수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했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윤미라무용단에 선발된 학부생들은 무용단이 참가하는 국내 대회부터 해외공연까지 최소 1~2회 이상 무대에 서지만 출연료는 한번도 지급된 적이 없다.
제보자들은 “우리도 대구국제무용제에서 공연했지만 출연료는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2010년대 학번인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시기에 1년간 윤미라무용단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대구국제무용제와 윤미라무용단 단독공연에 각각 참여했다.
학생 출연자들은 출연료를 받지 못했지만 대구국제무용제 측은 무용단에 출연료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용제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무용제에 참가하면 출연료를 지급한다. 20명 기준 500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관람객에게 티켓값을 받고 진행된 윤미라무용단 단독공연에서도 학생들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제보자들은 “공연마다 출연료가 지급됐다고 하는데 받아본 적이 없다”며 “이전에 무용단에 있던 선배들도 다 페이 없이 공연했다고 들었다.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생 출연자에게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윤 교수도 인정했다. 윤 교수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에게 출연료는 안 주는 게 당연하다”며 “전문적으로 훈련된 프로 무용수를 쓰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쳐서 무대에 세우는 것인데 왜 돈을 주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학생들에게는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기회이기 때문에 교육의 연장으로 봐야 하고, 따라서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또 “공연 한번 하면 1억5000만원쯤 든다. 대관비, 조명 등 기본 비용을 내면 남는 게 없는데 어떻게 애들한테 돈을 주느냐. 오히려 내 돈 들여 공연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대구국제무용제와 관련해서는 “만약 외부 공연이 있어 출연료 책정이 돼있었다면 학생들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시스템”이라면서 “애초에 나는 돈을 만질 수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국제무용제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출연료는 출연진이 아닌 무용단 대표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
“의상비 백만원에 다과비까지” 수백만원 사비 털어 서는 무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더 어려웠다. 윤미라무용단에 선발된 학부생들은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최소 200만원 이상 개인 돈을 써야한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100만원이 넘는 의상비부터 분장비, 심지어 다과비를 비롯한 연습 진행비까지 모두 학생들이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제보자는 “당시 의상비로만 80만원을 지불했다. 120만원이 되는 의상을 두 개 맞춘 친구도 있었다”며 “(의상을 맞추라는 요구가) 권유가 아니라 공지로 내려온다”고 꼬집었다. 제보자는 “이런 저런 비용을 다 합치면 윤미라무용단에 드는 돈만 적어도 200만원이다. 여자들은 공연이 많아 600만원까지 든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었다. 학기 중에는 오전 10시에 등교해 정규수업, 특강을 듣고 무용단 연습까지 마치면 밤 10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도 매주 3회 이상 반나절씩 무용단 연습에 나와야 했다. 연습 시간이 짧더라도 전날 스케줄이 바뀌는 일이 많아 다른 일정을 잡는 게 불가능했다.
제보자는 “연습 스케줄이 잡히면 내 연습 파트가 아닌데도 무작정 대기해야 했다”며 “남자 열댓 명이 좁은 탈의실에 모여서 8시간 대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제보자도 “정규 수업이 보통 오후 5~6시에 끝나고 오후 6시부터 특강이 시작돼 길면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이 특강까지 끝나야 윤미라무용단 연습이 들어가는 것”이라며 “주말에 연습이 자주 잡히고 그마저도 전날 스케줄이 바뀌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생각도 못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의상비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부담한 사실을 인정하며 “자기 옷을 자기가 해서 입는 게 당연한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다.
“장구 피 가격 견적 나왔어요~” 악기 수리비까지 떠안은 학생들
학생들의 고충은 열정페이가 전부가 아니었다. 악기가 망가지면 수리비도 책임져야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윤미라무용단 공연을 위해 이동하던 중 장구가 비에 젖어 파손되자 교수는 조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파손된 장구 수리비를 물어내라”며 학생들에게 찢어진 장구당 20만원을 낼 것을 지시했다.
문제는 이 장구가 구매한 지 10년 이상 된 낡은 장구였던 것. 뿐만 아니라 개인당 관리해야 할 장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는 공용 악기라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제보자가 건넨 당시 조교의 카톡을 보면 채편 7만5000원, 궁편 17만원 등 가격이 상세하고 나오고 장구 보내고 받는 트럭비까지 “3000원 정도씩 더 걷겠다”며 전부 학생들에게 청구했다.
항의를 할 방법도 없었다. 제보자는 “윤 교수는 학부 4년을 통틀어 수업에 2~3번 들어온다”며 “모든 의사 전달은 조교를 통해 해야 하는데 이런 항의는 조교 선에서 다 막힌다”고 말했다. 이어 “조교들도 위(윤교수)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폭탄 돌리기를 하다 결국 수리비를 물어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장구 수리비를 걷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등록금 냈지만…졸업 필수과목 ‘특강’
제보자들은 윤 교수가 운영하는 특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1년에 레퍼토리 1회, 창작 1회, 방학 2회 등 모두 4차례의 특강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했다. 대학 정규과정 밖에 개설된 교수의 개인 특강이지만 학생들에게 의무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용과의 경우 ‘레퍼토리 공연’과 ‘창작 공연’으로 이루어진 교내공연을 매년 각 1회씩 해야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은 이런 내용을 입학 당시 오리엔테이션에서 공지받는다. 특강은 이 교내공연에서 선보일 안무를 배우는 강의이다. 졸업을 하려면 특강을 꼭 들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특강인 만큼 매학기 등록금과 별도로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국민일보가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특강 강사료 지출확인서’에 따르면 1인당 수업료는 약 24만원이었다. 특강은 1년에 4회 개설되고 대다수 학생들이 4년간 4회씩 모두 16회 특강을 듣는 만큼 학생 1인당 등록금 외에 특강비로만 약 38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제보자는 “수업료만이 아니라 특강이 끝난 뒤 강사에게 걸어줄 꽃 비용 21만원까지 학생들이 나눠서 지불해야 했다”며 “강사료 지출확인서라고 적힌 종이를 영수증이라며 보여준 뒤 학년 대표에게 서명하라고 했다고 하더라. 서명한 뒤 윤 교수가 다시 걷어간 걸로 안다”고 말했다.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모학년도 지출확인서에는 1~4학년 특강 인원과 금액, 총액 등이 적혀 있다. 4학년 강사료 총액은 잘못 표기돼있다.
특강을 듣지 않겠다고 말한 학생들에게는 곧바로 윤 교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보자는 “특강을 듣지 않겠다고 하면 윤 교수나 강사가 전화를 걸어와 불참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며 “설명을 해도 다 반려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군 입대나 교통사고와 같은 불가피한 사유로 갑작스럽게 수강 인원이 줄면 빠진 학생의 수업료를 다른 학생들이 나눠서 추가로 분담하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13명 수강생 중 1명이 사고로 수강이 불가능해지면 24만원을 나머지 12명이 2만원씩 추가로 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윤 교수는 학생들의 강제 수강 주장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특강을 들으라고 강제한 적 없다”며 “특강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개인공연으로 세워 다 졸업시켜줬다”고 주장했다.
반면 학생들은 개인 무대가 특수한 경우에만 허락됐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들은 “보통 무용에 뜻이 없는 복학생이나 콩쿠르 나갔다 온 친구 아니면 개인 무대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개인 무대를 허락받은 사람은 26명 중 5명도 안됐다”거나 “우리 학번 중 개인 공연을 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도 했다.
제보자는 “졸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졸업공연은 전적으로 교수 재량이어서 무용과 학생의 졸업 여부 역시 교수 손에 달려있다”며 “이를 빌미로 수업료 명목으로 사실상 돈을 걷어가는 것이다. 다른 학과 학생들은 노력만 하면 다 하는 졸업을 왜 우리는 교수에게 돈을 바쳐가며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무용학과 행정실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특강은 대학 본부에서 ‘실험실습비’ 명목으로 예산이 내려와 진행된다. 이는 모두 무료”라며 “이외에 교수들이 돈을 받고 특강을 한다는 사실을 들은 바는 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유료 특강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경희대 본부측도 유료 특강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본부측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직접 수업료를 받는 무용과의 특강에 대해 “정규 수업에 들어가 있어야 할 수업이 유료 특강으로 진행되는 건 옳지 않다”며 “관련 제보가 들어오면 조사를 한 후 징계위원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원칙적으로 특강은 학과의 재량이라 처벌할 수 있는 학칙은 없다”고 덧붙였다.
“열정페이에 갑질, 이제 못참겠습니다”
학생들이 교수의 갑질에 항의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윤미라무용단으로 무대에 선 것 자체가 대단한 스펙이니 참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제보자들은 허울 좋은 핑계라고 입을 모았다. 제보자는 “윤미라무용단 정식 무용수는 대학원생”이라며 “학부생들은 머릿수 채워 넣으려고 쓰는 걸 무용계가 다 아는데 이걸 무슨 스펙으로 쓰겠느냐”고 지적했다.
갑질에 항의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용계가 좁은데다 윤 교수의 영향력이 커서 항의를 했다가 미운털이 박히면 무용수로서 앞길이 막힐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제보자들은 “솔직히 지금도 무섭다”며 “공론화를 했다가 윤 교수가 제보자를 색출해 우리 학번 전체에 불이익을 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화를 해보려고 했지만 다들 무서워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이유를 물었다. 제보자들은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며 “입을 닫으면 관행이라는 이유로 갑질과 갈취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윤 교수에게 시달리는 것이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본사는 지난 2020.2.6.자 ‘“교수님, 출연료 왜 안주나요” 경희대 무용과 갑질 파문, 각종 비용 전가에 특강 강제수강 논란까지…’ 제하의 기사에서 ‘윤미라 교수는 윤미라 무용단에서 공연한 학생들에게 출연료를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윤미라 교수가 일부 공연의 경우 참여한 학생들에게 출연료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이홍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