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 중 중국 이외 국가에서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홍콩에서는 마스크를 구하겠다고 1만명이 줄을 서 밤을 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추운 날씨에도 밤을 새워 줄을 서는 시민들에게 마스크 판매 기업이 “줄 서지 말고 건강을 챙기라”고 호소했지만 시민들은 작은 버너를 가져와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기업인 럭웰인터내셔널은 카오룽베이 지역에서 이틀에 나눠 50개의 마스크가 든 1만1000개의 상자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애초 럭웰인터내셔널은 이날 정오에 3000명에게 최대 2박스의 마스크(100개)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자정 줄을 선 인원이 3000명을 돌파하고 이후 점차 줄이 길어지는 것을 보며 6일에 판매하려던 5000개의 상자를 미리 꺼내오기로 결정했다.
전날 3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하며 총 18명이 된 홍콩은 마스크를 비롯한 위생용품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다. 그런 탓에 럭웰인터내셔널이 55만개의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20~30시간의 기다림을 무릅쓰고서라도 줄을 서는 사람들이 금세 1만명을 돌파하게 된 것이다.
4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줄 서기는 자정 무렵 3000여명에 달했고, 이날 오전 9시30분에는 1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낮 12시30분에도 8300여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대열을 지키며 줄은 약 4㎞까지 뻗었다.
자정 무렵 길어지는 줄을 보며 당황한 회사 측은 이날 새벽 1시30분쯤 페이스북에 긴급 공지를 띄우고 “추운 날씨에 용기 내기를 멈추고 줄 서기도 멈춰 달라. 부디 건강을 챙기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시민들은 작은 버너를 가져와 물을 끓이고 컵라면에 부어 먹기까지 했다. 마스크를 사겠다는 열정이 추위마저 넘어서버린 모습이었다.
제리 로 럭웰인터내셔널 매니저는 이같은 광경을 보며 “사람들이 20~30시간을 기다려 마스크를 사려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홍콩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스크가 부족해서 사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만 로 매니저는 이 마스크가 시간 압박에 쫓겨 건강표준에 대한 공식인증을 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자가 말하길 이 마스크는 의료용 마스크라고 했다”며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고객들이고 우리는 우리의 판단에 따라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오후 6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셸리 리(30)는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앞에 200여명이 서있는 상태였다며 “소식을 접하곤 곧바로 와서 밤새 줄을 섰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본토조차도 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얘기하는데 몇몇 홍콩 당국자들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중국 본토가 홍콩 정부보다 낫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두 여동생 및 세 조카와 함께 전날 오후 7시부터 줄을 섰던 50대 여성 애니 웡은 600개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왔다. 그는 “최소한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게 정부가 국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홍콩 경찰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시민들에게 다가와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트위터에는 이날 오후 두 명의 홍콩 경찰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와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는 글과 함께 영상이 올라왔다. 이 게시글을 올린 네티즌은 “홍콩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에 마스크를 사려고 인내심을 갖고 줄을 서있었는데 2명의 경찰이 와서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며 “왜? 알다시피 경찰들은 이게 불법 집회라고 말할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해 6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 시위는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소강상태에 놓여있다. 그런 상황에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불법 집회’를 우려한 홍콩 경찰이 무리하게 해산을 요구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게시글 속 영상을 보면 파란색 마스크를 쓴 경찰 두 사람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말을 하고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나 경찰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경찰의 말을 들은 시민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걸어가는 경찰을 계속 쳐다본다.
트위터 글 작성자는 “진지하게 홍콩 경찰은 뭔가 유용한 걸 해라. 예를 들면 우한에 가서 도와준다던가”라고 적으며 글을 마무리했다.
홍콩에서는 전날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던 39세 남성이 숨져 홍콩 내 첫 번째 사망자로 기록됐다. 또 같은 날 하루 새 3건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홍콩 내 확진자는 18명으로 늘었다.
중국과 접경지역이 많은 홍콩에서 확진자가 계속해서 늘고 확산세가 커지자 지난 3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선전만 검문소와 홍콩, 주하이,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등 2곳을 제외하고 중국 본토와 연결되는 모든 검문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또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은 승객 수 급감에 따라 중국 본토 운항 노선의 90%를 감축하고 전반적인 운항 노선의 규모도 30% 줄이기로 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