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여러 명을 감염시키는 이른바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가 광주에서 출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밀폐된 의료기관에서 동시에 수 명을 감염시키는 사람’이라는 보건당국의 정의가 16번째 환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진 2015년 상황에 준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태국 여행 도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16번 환자(42세 한국인 여성)는 지난달 25일 발병 후 최소 306명을 접촉했다. 18번째 환자로 확진된 딸의 간병과 자신의 폐렴 치료를 위해 광주21세기병원에 일주일가량 머물러 이곳에서만 272명의 접촉자를 냈다.
16번 환자는 신종 코로나로 의심돼 전남대병원도 두 차례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19명의 추가 접촉자를 양산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브리핑에서 “환자가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선별진료를 받아 접촉자가 19명밖에 생기지 않았다”고 했지만 초기에 걸러지지 않아 되레 추가 접촉자를 낸 셈이다.
보건당국은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가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1~2명 수준이기 때문에 슈퍼 전파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장시간 머문 16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 본부장은 “광주21세기병원이 정형외과다보니 고령의 만성기저질환자보다는 급성기의 수술 후 회복단계에 있는 환자가 대부분”이라면서도 “(16번 환자가) 외래진료도 받아 외래진료를 왔던 환자들까지 (접촉자) 명단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의료진 가운데 확진환자가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보건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조사대상 유증상자로 격리돼 감염 여부 검사를 받고 있는 174명 중 의료진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16번 환자의 사례를 예의주시했다. 병원 중심으로 빠르게 번진 메르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광주21세기병원이 100병상이 안 되는 병원이라 감염관리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료진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환자, 방문객이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족 간 감염에서 병원 감염까지 지금의 신종 코로나 진행 양상이 메르스 때와 꽤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16번 환자가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에 다녔을 것이어서 환자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고 다른 환자에게 얼마나 노출됐는지가 중요하다”며 “(16번 환자의 경우가) 메르스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16번, 18번 환자가 입원했던 병실이 있는 광주21세기병원 3층 환자들을 5~6층으로 분산 배치했다. 기존 5~6층 환자들은 격리 조치했다. 이 병원엔 의료진 70여명과 입원환자 80여명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2명의 추가 확진자가 생겨 국내 신종 코로나 환자는 총 18명이다. 컨퍼런스 참석차 싱가포르에 갔던 38세 한국인 남성이 현지에서 말레이시아 환자와 접촉해 17번째 환자로 확인됐다. 확진환자와의 접촉자는 일부가 해제돼 전날 1318명에서 이날 956명으로 줄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