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스캔들 잠재우고 개헌 물꼬’로 신종 코로나 톡톡히 활용

입력 2020-02-05 17:08 수정 2020-02-05 18:00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일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 확산을 ‘벚꽃 보는 모임’ 등 스캔들을 희석하는 한편 숙원인 개헌의 지렛대로 톡톡히 이용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전날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신형 코로나 대책과 긴급사태 조항을 만들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에 관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헌법과의 관련성 유무와 관계없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헌법의 긴급사태 조항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를 통해 개헌의 물꼬를 트려는 집권 자민당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자민당은 최근 신종 코로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개헌을 통해 ‘긴급사태’ 규정을 신설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가 2018년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지진 등 대규모 재해가 발생해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칠 여유가 없는 경우 내각이 법률과 사실상 비슷한 효력을 가진 ‘정령’(政令)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사태 조항이 포함돼 있다. 긴급사태가 선언되면 누구든지 신체, 재산을 지키기 위한 조치와 관련해 발령되는 국가나 공공 기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동안 개헌 관련해서는 전쟁 포기 및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대한 찬반 논의가 주를 이뤘고, 긴급사태 조항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우한에서 귀국한 일본인 두 명이 바이러스 검사를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개헌을 통해 긴급사태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민당 의원들로부터 잇따르고 있다.

자민당은 일본 여론이 재난·재해 등의 문제에 민감한 점을 염두에 두고 개헌을 하든 하지 않든 우선 논의해보자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부키 분메이 전 중의원 의장은 지난달 30일 자민당 회의에서 “신종코로나는 헌법 개정을 위한 하나의 큰 시험대다. 긴급사태 사례의 하나”라고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신종 코로나 사태를 개헌과 연계하려는 시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민당의 개헌 구상에 반영된 긴급사태 조항은 위기를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이나 의회의 견제 기능을 대폭 제약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개헌 논의가 물살을 타면 이른바 평화 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감염 확대 방지에 필요하다면 온갖 조치를 현행법으로 할 수 있다. 헌법과는 전혀 관계없다”며 “인권에 관한 문제를 헌법 개정에 악용하려고 하는 자세는 용납할 수 없다”고 집권 자민당을 비판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현재로선 긴급사태 조항 반영을 위한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신종 코로나 사태는 아베 총리에게 개헌의 추동력을 주는 동시에 ‘벚꽃 보는 모임’ 논란과 카지노 유치를 둘러싼 현역 의원의 수뢰 등 아베 내각을 둘러싼 스캔들의 희석 효과를 가져다 줬다. 아베 총리를 1대1로 추궁할 수 있는 국회 예산위원회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당초 스캔들 추궁에 집중됐던 야당의 화력이 코로나 사태로 분산됐다.

아베 총리는 또 지난달 30일 정부 차원의 신종 코로나 대책본부를 설치한 뒤 자신이 본부장으로 연일 회의를 주재하는가 하면 지정감염증 지정, 전세기 도입 등을 발빠르게 결정해 국민에게 일하는 모습을 피력하고 있다. 덕분에 일본 국민은 현재로선 신종 코로나에 대한 아베 정부의 대처에 ‘평가한다’ 50%로 ‘평가하지 않는다’의 37%를 웃도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