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앙숙 관계는 국정연설 현장에서도 다시금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악수 요청을 외면하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이에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소개하며 관례적인 경어를 생략한 데 이어 연설 종료 직후 원고를 찢어버리며 맞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밤(현지시간) 국정연설장인 하원 본회의장에 입장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석에 자리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펠로시 의장에게 각각 연설문 원고를 전달했다. 펠로시 의장은 원고를 받아든 뒤 오른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본 체도 않고 고개를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무시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두 사람의 껄끄러운 관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냉대에 펠로시 의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을 거둬들였다. 이어 어깨를 으쓱하고 양쪽 눈썹을 치켰다가 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펠로시 의장이 몸짓으로 “아무튼 난 할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묘사했다.
펠로시 의장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통상적으로 하원의장은 국정연설 청중에게 대통령을 소개할 때 “미합중국 대통령을 이 자리에 소개하는 것은 내게 크나큰 특권이자 각별한 영광”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이날 경어를 모두 생략하고 “의원 여러분, 미합중국 대통령이다”라고만 말했다.
압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직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책상 위에 원고를 펼쳐놓고 눈으로 따라 읽던 펠로시 의장은 마지막 문장인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기를 기원한다”가 나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문을 찢기 시작했다. 원고 뭉치를 한 번에 찢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종이를 넷으로 나눠 찢는 치밀함을 보였다. 바로 옆에서 기립해 박수를 치던 펜스 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행동을 곁눈질로 보더니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렸다.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바로 뒤에서 원고를 찢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됐다.
펠로시 의장은 국정연설 종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시 내 앞에 놓인 선택지들 중에서는 공손한 편에 속하는 행동이었다”고 말했다고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전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례를 범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