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전세계적 전염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번지고 있다. 유엔은 4일(현지시간) 이번 사태를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최근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라는 이유 탓에 중국인 뿐만 아니라 외모가 비슷한 아시아계 전체를 향한 차별이 급증하고 있다. 독일 도이치벨레는 신종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인종차별을 키우고 있다며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늘어날수록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 사례 보고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동양인 인종차별은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도 이러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베를린 북부 모아비트 지역에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한 20대 중국 여성은 2명의 여성에게 욕설을 듣고 발길질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독일 경찰은 이 중국 여성이 신종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인종차별적 공격을 당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최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는 독일 출생인 중국계 청년이 고향인 함부르크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 음료수 판매대에서 여성 직원에게 ‘중국인들은 오염됐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교민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사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중학생 교민은 마트에서 주인으로부터 아랍어 욕설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주독 한국대사관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아시아계에 대한 경계와 혐오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니 신변안전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안전공지를 띄웠다.
뉴욕에서도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 2일 페이스북에는 맨해튼 차이나타운 그랜드스트리트 전철역에서 한 흑인 남성이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왔다. 남성은 계단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을 향해 “감염된 더러운 년”이라고 외치고 수 차례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언론도 부적절한 이미지와 메시지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층 보도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주 표지에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작은 글씨 아래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노란색 굵은 글씨가 달린 문구를 제목으로 넣었다. 프랑스 지역신문 르쿠리에피카르는 신종 코로나 문제를 다루면서 ‘황색 경계령’이라는 제목을 썼고, 호주 신문 헤럴드선은 빨간색 마스크 이미지 위에 ‘차이나 바이러스 대재앙’이라는 문구를 달아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주독 중국대사관은 슈피겔에 “공포를 일으키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심지어 인종차별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보 성향의 주간지 차이트도 기고문을 통해 “슈피겔이 인종주의의 편에 서길 원치 않는다 해도 이번 호의 표지 제목은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인종주의자들을 들끊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종 차별 논란이 확산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사태의 희생자와 무고한 이들에 대한 낙인 찍기를 막아야 한다”며 “이에 대한 강한 관심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과 그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들에 강력한 국제적 연대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