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병원이 뭐만 하면 돈 따오라고…” 지친 표정의 이국종

입력 2020-02-05 15:08

아주대병원과 갈등 끝에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국종 교수가 5일 “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게 너무 힘들었다. 이젠 지쳤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병원 측과의 갈등이 세간에 알려진 뒤 처음으로 출근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해군 훈련과 휴가 때문이었다. 올해 처음 병원에 나온 그는 외상센터 회의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사임원 제출 이유를 설명하며 “지쳤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 교수는 “닥터헬기 출동 의사를 증원하는 문제도 사업계획서상에는 필요 인원이 5명인데, 실제로는 1명만 타왔다.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병원 측이 나머지 인원은 국도비를 지원받을 경우에 채용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는 결국 필요하면 돈을 따오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뭐만 하면 돈을 따오라고 했다. 간호사가 유산되고 힘들어해도 돈을 따오라고 했는데 이제 더는 못하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주대병원과의 갈등 끝에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국종 교수가 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에서 취재진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교수는 병상배정 문제 등 그간 병원 측과 갈등을 빚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털어놨다. 그는 “외상센터에 병상을 배정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힌 ‘병상 배정표’가 언론에 보도되자 부원장은 ‘원무팀에서 자체적으로 한 것’이라고 부인했다”며 “위에서 시키지 않았는데 원무팀에서 배정표를 왜 함부로 붙이겠나”라고 지적했다.

병원장과의 갈등과 관련해서는 “병원장이라는 자리에 가면 네로 황제가 되는 것처럼 ‘까라면 까’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면서 “병원장과 손도 잡고, 밥도 먹고, 설득도 하려고 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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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취재진과 대화 내내 “말을 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안 된다”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등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며 허탈해 했다.

그는 향후 계획을 묻자 “외상센터에서 나갔으면 좋겠지만, 나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병원은 저만 없으면 잘 될 것이라는 입장인 것 같은데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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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와 아주대병원의 갈등은 지난달 13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이 과거 이 교수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등 폭언을 퍼붓는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이후 양측이 병실 배정,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이미 수년 전부터 자주 다툼을 벌였고 지난해부터는 새로 도입한 닥터헬기 운용 문제로 갈등이 격화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결국 이 교수는 “너무 지쳐서 더는 외상센터 일을 못 하겠다”며 지난달 29일 외상센터장 사임원을 냈고 병원은 4일 이를 받아들였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