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미국 등에서 반려견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반려동물이 신종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개·고양이가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에서는 반려동물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폭스뉴스는 신종 코로나 발생 이후 반려견 마스크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반려견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는 없으나 혹시 모르는 상황을 염려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인 판매업자 저우톈샤오(33)는 매체에 “반려견 전용 마스크 판매량이 10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저우톈샤오는 “신종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150개 정도를 팔았는데, 현재는 하루에 50개 이상 팔린다”고 말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반려견들의 건강에도 더욱 신경 쓰고 있다”며 “반려견 마스크의 가장 큰 목적은 강아지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거나 핥는 행위를 막아 바이러스 노출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한 전문가가 반려동물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시작됐다. 리란쥐안 국가위생위원회 소속 전염병 전문의는 지난달 29일 관영 중국CCTV에 출연해 “반려동물이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반려동물들이 격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포유류, 특히 반려동물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보도가 중국CCTV 공식 SNS에 올라오고, 다음 날 중국 인민일보 영문판 사이트에 같은 보도가 번역돼 게재되면서 두려움은 온라인으로 퍼져나갔다. 일부 매체에서 이 발언을 두고 ‘고양이와 개가 신종 코로나를 퍼뜨릴 수 있다’고 왜곡 보도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이에 WHO는 지난달 30일 반려동물이 신종 코로나에 걸린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WHO는 “지금으로선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신종 코로나에 전염된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반려동물과 접촉한 후 비누로 손을 씻는 게 좋다. 동물이 갖고 있는 대장균이나 살모넬라 등 일반적인 세균의 감염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
WHO의 해명에도 반려동물과 신종 코로나의 연관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온라인으로 계속 퍼졌다. 트위터에서는 “강아지들이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는 내용이 공유됐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반려견 마스크 수요도 빠르게 늘었다. 미국의 반려견 전용 마스크업체 ‘K9 마스크’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USA투데이에 “최근 3일간 매출이 300~400% 급증했다. 재고가 동이 날 정도”라고 전했다. 이들이 판매하는 반려견 마스크는 대부분 미국 내의 수요라고 한다.
불안감이 가시지 않으면서 중국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더선은 지난달 31일 최근 톈진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고층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강아지는 주차된 차량에 부딪힌 뒤 그대로 죽었다. 밤늦은 시간을 틈타 주인이 직접 강아지를 집에서 내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이 주택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어딘가에서 추락해 죽은 고양이 5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됐고, 수사 당국은 고양이 털이 잘 관리된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반려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불안감이 확산되자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4일 “신종 코로나가 동물에서 사람에게 넘어왔다는 우려 때문에 반려동물 감염을 걱정하지만, 실제로 동물의 병이 사람에게 넘어오거나 사람의 병이 동물로 넘어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주 장기간 밀접한 접촉이 오랫동안 반복돼야 가능한 거라 신종 코로나가 반려동물에게 갈 가능성은 거의 없고, 반려동물의 병이 사람에게 넘어올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