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녀온 교수는 두고…한중일 학생 특정해 출입금지”

입력 2020-02-05 09:40
로마의 유명 음악학교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홈페이지 캡쳐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음악학교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1학년 황수민씨가 ‘동양인 학생 수업 참석 금지’ 결정으로 빈축을 산 학교 측을 비판했다.

황씨는 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로베르토 줄리아니 음악원 원장이 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부터 설명했다. 그는 “원장이 ‘중국에서의 전염병이 돌고 있는 관계로 동양계 학생의 수업 참석을 금지한다’는 메일을 모든 교수에게 전송했다. (동양계 학생 다음에는) 한‧중‧일이 괄호 속에 분명하게 명시됐다”며 “학교 공식 사이트에는 이 내용을 올리지도 않았다. 또 실제 강의실 출입이 금지된 학생 대부분은 꽤 오랫동안 로마 주변에서 살아왔던 학생들이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이어 “저희 클래스 학생 한 명이 지난해 12월 중국을 다녀온 거로 알고 있다. 이 학생은 괜찮긴 한데 혹시 몰라서 2주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며 “선생님들도 중국을 갔다 왔다. (다녀온 뒤엔) 레슨까지 했다. 학교 전체가 큰 스캔들에 휘말렸다.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캡쳐

황씨는 음악원을 비판하는 현지 언론의 반응도 전했다. 그는 “이탈리아 유력 신문사인 라 레푸블리카에 처음 기사가 났고 다른 신문사들도 인터뷰하러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크게 크게 확산이 되니까 논란이 커졌던 것 같다”며 “신문들은 ‘학교 조치가 공포를 조장하고, 학생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불합리하고 미친 통보’라는 교수들의 의견을 비중 있게 실었다”고 답했다.

황씨는 원장의 결정에 분노하는 이탈리아 학우들의 목소리도 전했다. 그는 “이탈리아 학생들도 당연히 같이 화를 낸다. 이들도 ‘어제까지 수업을 같이했는데 어떻게 너희만 수업 거부를 당할 수 있냐’라고 (말한다)”라며 “학교가 인종차별적인 조치를 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정말로 생각한다면 학교 문을 2주 동안 닫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논란이 커지자 음악원은 후속 조치에 돌입했다. 황씨는 “원장인 지난주 일요일 늦은 저녁 학교 공식 사이트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다녀왔거나,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경유했거나, 중국을 경유했거나 바이러스 위험국에 2주 안에 다녀온 사람들’ 조건에 부합하는 학생들만 5일 학교에 자진해서 검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통보했다”며 “(문제없는 학생들은) 다시 수업에 나오라는 말도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내부 모습. 홈페이지 캡쳐

앞서 라 레푸블리카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이 교수들에게 동양계 학생들의 수업 참석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며 “원장의 사인이 담긴 이 메일은 160여명의 교수 전원에게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학교 측은 “2월 5일 오후 2시 의사가 왕진할 예정이며,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학생들만 수업 참석이 허용될 것”이라며 “이런 점을 해당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메일을 받은 교수들 사이에선 학교 측의 대응 방식이 지나치게 불합리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교수는 “학교 측이 수업에 참석할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는 공포를 확산하고 해당 학생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미친 대응 방식”이라고 학교 측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음악원에는 42개국 총 1335명의 학생이 수학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아시아계는 81명이다. 한국 학생이 33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32명, 일본 11명, 필리핀·대만 각 2명, 북한 1명 등이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