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선거개입 13명 공소장, 국회제출 않겠다” vs 검찰 “전례 없다”

입력 2020-02-04 17:36 수정 2020-02-04 17:38

법무부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 결과 재판에 넘겨진 송철호 울산시장,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의 검찰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비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법무부의 조치는 전례가 없는 일일뿐 아니라 부적절한 선거개입 여지마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소된 13명 중 4명은 이번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고, 정치권에서는 예비후보 적합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국회가 제출 요구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피고인 13명의 공소장을 그대로 제출하지 않겠다고 4일 대검찰청에 통보했다. 이러한 조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상급 기관의 결정에 우리가 뭐라 하겠느냐”며 “(공소장부터 비공개가 결정된) 기억나는 전례는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송 시장 등 13명을 기소하자 법무부를 통해 공소장 제출을 요구했다. 국회의 제출 요구 사실을 전달받은 대검은 공소장 원문 속 피의자들의 개인정보를 삭제해 법무부에 30일 상신했다. 추후 관련자 수사를 위해 법원에 낸 공소장을 국회에는 당분간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공소장들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 대검의 설명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4일까지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고, 이날 급기야 “비공개하거나 개요 형식으로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대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조치다. 국회가 법무부를 통해 제출을 요구하는 검찰 공소장은 기소 시점으로부터 1~2일 안에 공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업무방해 혐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경우 공소장이 기소 당일 국회에 제출됐다.

법무부가 국회의 제출에 응하지 않아온 배경 중 하나는 개인정보 유출도 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는 성범죄 사건 등에 적용돼온 원칙이다. 결국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일관성과 형평성에서 벗어났고,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의 선거개입 범죄사실이 세부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억지로 막은 셈이라는 해석마저 낳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농단’ 등 주요 사건뿐 아니라 국회의 요구가 있는 사건 공소장은 보안이 필요한 경우만 빼면 모두 법무부에 보냈고, 법무부도 그대로 국회에 제출해 왔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결정은 총선 국면에서 국민적 알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황 전 청장 등 피고인 다수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상황인데, 공소장의 비공개는 유권자들의 평가를 차단한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박근혜정부 당시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던 사례도 거론됐다. 정부의 입장에서 유쾌하지 않은 수사 결과임이 분명했지만, 결국 원칙대로 공개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법무부의 행위가 또다른 선거개입, 직권남용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끝내 공소장의 공개를 막는다면 총선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국가를 대리해 공적으로 공개해 기소한다는 의미에서 ‘사소’가 아닌 ‘공소’”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구승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