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에 에이즈약 효과?…치료제는 5~7년, 백신은 더 오래 걸려

입력 2020-02-04 17:33 수정 2020-02-04 18:1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감염자 발생 국가 의료진들이 환자 치료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
증상 완화 치료 외에 뾰족한 치료약이 없는 상황에서 에이즈(HIV)나 에볼라 등 기존 항(抗)바이러스치료제를 단독으로 혹은 섞어 써 완치시킨 사례들이 잇따라 알려지며 일말의 희망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에이즈 약으로 치료 효과를 보인 다수의 환자 사례가 보고됐다.

하지만 변종이 많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를 없애는 치료제 개발까지는 최소 5~7년이 걸리고 예방백신 개발은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마찬가지로 ‘RNA(리보핵산)’ 기반의 코로나 바이러스다. 유전물질을 DNA가 아닌, RNA에 담고 있다. RNA는 DNA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해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들어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잘 일으킨다. 이 때문에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매우 어렵다.
2002~2003년 사스, 2013~2015년 메르스 대유행 이후 전세계 연구진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성과를 보지 못한 이유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각국 의료진들은 기존 다른 치료제 가운데 신종 코로나에 효과를 보이는 약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중국의과학원 연구진 등은 신종 코로나 환자 41명에게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는 두 가지 성분(리토나비르, 로피나비르)을 조합·투여해 성과를 냈다는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시중에는 두 성분이 든 에이즈약 ‘칼레트라’가 팔리고 있다. 이 약물은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필요한 효소(단백분해효소)를 막아주는 원리다.

엄중식 가천의대 길병원 교수는 4일 “에이즈 바이러스도 RNA 계열이며 바이러스 복제 과정에서 단백분해효소를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 사태 때도 쓰였다”고 설명했다.
국내 첫 번째(1번) 환자로 확진돼 인천의료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아 온 35세 중국 여성에게도 두 가지 성분의 에이즈 약을 섞어 투여해 증상이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1번 환자의 증상 및 치료 경과를 분석한 논문을 처음으로 대한의학회지(JKMS)에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투약 후 최고 38.9도까지 올랐던 열은 입원 11일 만에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고 호흡곤란도 개선됐다. 흉부X선 검사에서는 폐렴 소견도 줄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2번 환자에게 에이즈 약 투여 후 완치된 사실을 이날 공개했다. 이 환자는 국내 감염자 가운데 처음으로 퇴원을 앞두고 있다.
4번과 12, 14번 확진자를 격리 치료중인 분당서울대병원도 이들 3명의 환자에게 에이즈 약 투여 후 증상이 개선되거나 안정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엄 교수는 “에이즈 치료제가 폐렴이 진행된 중증 환자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과학적 근거를 더 확보해야 확실한 효과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태국 의료진은 독감 치료제 오셀타미비르(타미플루)와 에이즈약을 혼합해 71세 여성 환자를 완치시켰고 미국은 35세 남성 환자를 에볼라 치료제(렘데시비르)로 치료한 걸로 알려졌다. 에볼라 역시 신종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RNA 바이러스다.
이집트 연구진은 C형간염 치료제(소포스부비르, 리바비린)가 신종 코로나를 억제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C형간염 바이러스도 RNA계열이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기존 치료제의 신종 코로나 치료 효과에 대한 보고가 잇따르자 국내 감염자 치료 의료진들의 임상진료 정보의 공유 필요성이 제기됐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는 “지금은 마땅한 방법이 없어 각 의료진들이 자구책으로 다양한 치료법을 쓰고 있는 수준”이라며 “감염병 치료 중심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에 가칭 ‘중앙임상위원회’ 같은 임시 진료 의사협의체를 만들어 기존 치료제의 효과 검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국가들에서 효과를 보인 치료제를 국내에서도 시급히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볼라 치료제는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신종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의 조속한 개발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변종이 많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충분한 분리가 쉽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들며 그만큼 성공률도 낮기 때문이다. 또 세포나 동물 대상 전 임상시험,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거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
제약사 입장에선 한 때 유행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보고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뛰어들기도 위험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엄 교수는 “치료제의 경우 빨라도 5~7년, 백신 개발은 훨씬 더 많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1983년 에이즈 바이러스가 발견된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C형간염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백신이 있는 독감은 개발되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