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업은 아니어야 한다는 이광재 “정치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

입력 2020-02-04 17:25
이광재 여시재 원장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시재 주최 심기준 의원실 주관으로 열린 '동북아 가스허브,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동북아 에너지 협력과 한국의 가스산업 발전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광재 전 강원도 지사가 4일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그런 일(정치)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크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달 30일 이 전 지사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제안받은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으나 본인의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한 바 있다. 이 전 지사가 총선 출마를 고심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은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전 지사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 일선에 나서는 부분은 상당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며 “시대정신을 뚫고 갈 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인지 (하지만) 저는 부족한게 많은 사람”이라며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국가적인 도전 과제는 크고 해결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과연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 전 지사는 본인의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으나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은 수행하겠다고 했다. 그는 “선거를 열심히 도우려고 한다. 정치를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정치는 나빠진다”며 “무슨 무슨 심판이라는 심판보단 대한민국이 어디로 나아가야 되는지, 비전과 미래를 경쟁하는 땅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전 지사가 본인의 출마 여부에 대해 고심하는 이유로는 김종필 전 총리의 ‘허업(虛業)’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날 출마를 고심하는 이유로 김 전 총리의 허업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과거 김종필 총리가 정치는 허업을 쌓는 거라고 했다”며 “허업이 되지 않고 담대한 씨앗을 만드는 게 쉬운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전 지사가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총리는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를 만나 “정치는 허업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총리가 말한 ‘과실’이 이 전 지사가 말한 ‘담대한 씨앗’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전 지사의 메신저 프로필에는 “허업의 바다가 아니고...”라고 적혀있다.


이 전 지사가 이날 언급한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도 그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국회에 오랜만에 온 소감에 대해 “3년 만에 왔다. 회의하며 느꼈는데 엘리엇의 황무지란 시가 있다”며 “국회가 황무지 같다. 어려운 시기고 한때는 정치와 여의도란 것에서 희망의 씨앗이 심고 커져 나가는 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정치권의 진영 싸움도 이 전 지사의 총선 출마를 고민하게 하는 이유로 손꼽힌다. 이 전 지사는 당초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외부에서 당을 지원사격하겠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해찬 대표와의 만찬 직후 “여야의 진영싸움보다는 새로운 대한민국 향한 위대한 도전을 했으면 한다”며 “누가 더 미래 청사진 가지나. 미래를 설계 할 수 있는 능력 있나, 그런 아름다운 경쟁이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날도 “저는 선거가 진영싸움이 아니라 뭔가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