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로 편법 증여, 저가양도, 증빙 없이 금전거래 등
강남4구 조사대상 중 55% 탈세 의심
21일부터는 상시조사 체계 도입…조사 대상·지역 확대
20대 A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1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샀다. A씨의 자기자금이 1억원에 불과한데도 고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모의 편법증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부모를 임차인으로 등록해 전세 보증금 4억5000만원을 받았다. 금융기관 대출(4억5000만원)도 주택구매 자금으로 썼다. 국토교통부는 부모와 자식이 정상적 임대차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임대보증금 형식을 빌린 편법증여일 수 있다며 국세청에 탈세 조사를 의뢰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도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고강도 부동산 실거래 합동조사를 펼쳤다. 이번 조사의 주요 표적은 가격 상승을 주도한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다. 총 1333건의 조사대상 중 강남 4구에서만 508건(38%)의 실거래 내역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강남 4구 조사대상 가운데 절반(281건)에서 이상거래를 발견했다. 모두 국세청에 통보됐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 동안 관계기관 합동조사팀이 서울지역 1333건의 실거래 내역을 조사해 이상거래 670건을 국세청에 통보했다고 4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1차 조사에선 532건(조사대상 991건)을 국세청 통보조치했었다. 조사대상 1333건은 1차에서 검토를 마치지 못했던 거래, 신고분 가운데 매매계약이 완결돼 조사가 가능한 거래 등이다.
합동조사팀은 전세금 형식을 빌려 가족 간 편법증여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 실거래가 대비 저가에 양도해 증여세를 탈루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 차입 관련 증명서류 또는 이자지급내역 없이 가족 간 금전거래를 한 사례 등을 적발했다. 금융위원회와 행정안전부 점검이 필요한 94건, 거래신고법을 위반한 3건, 명의신탁이 의심되는 1건(경찰청 통보)도 잡아냈다.
이번 조사에서 이상하다고 지목된 거래의 대부분은 ‘고가 주택’ ‘서울 강남 4구’라는 특징을 보였다. 국세청 통보 670건 중 40%(267건)는 시가 9억원 이상 고가 주택이었다. 국세청 통보 건수의 41.9%를 차지한 281건은 강남 4구(강남구 109건, 송파구 82건, 강동구 56건, 서초구 34건)에서 발생했다. 강남 4구에서 조사를 받은 508건에서 ‘의심’ 딱지가 붙어 국세청에 통보된 건수는 55.3%(281건)에 이른다. 상당수 이상거래가 서울 강남 4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한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탈세가 의심되는 거래는 국세청에서 자금 출처 등을 분석해 세무 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교란행위를 계속 강도 높게 조사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달 21일부터 실거래 내역 직권수사에 착수한다. 국토부 1차관 직속으로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을 설치하고, 특별사법경찰 등 전담 인력을 배치해 편법증여, 대출규제 미준수, 업·다운계약, 집값 담합, 불법전매, 청약통장 거래, 무등록 중개 등의 불법행위를 상시 조사한다. 김 정책관은 “21일부터 경기 과천·성남 분당·광명·하남, 대구 수성, 세종 등 투기과열지구로 범위를 넓혀 조사하겠다. 자금조달 세부내용을 폭넓게 들여다 봐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