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억제를 위해 여행·교역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며 세계 각국에 자제를 요청했다. 과도한 불안조성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차원의 말이었지만, WHO에 최근 영향력이 높이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WHO 집행이사회에서 “모든 나라가 증거에 기초한 일관된 결정을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60여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 등 ‘중국 봉쇄’ 조치를 내놓자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중국 외 지역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이 “아주 적고 (속도가) 느리다”며 “(오히려) 이런 전략으로 중국 밖 (환자) 수는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행금지 등으로 인해 밀입국이 성행할 수 있고, 이 경우 감염자 동선 파악 및 방역이 어려워진다는 WHO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 한 셈이다.
일각에선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최근 중국이 WHO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영향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WHO와의 협력을 강화해 ‘보건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WHO는 2017~2019년 연례총회(WHA)에 대만을 초청하지 않고 대만 언론의 취재 신청도 거부했다.
특히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WHO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겠다고 거듭 밝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새로운 지원책으로 나서고 있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당선 직후 “미국이 예산을 줄이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많은 나라와 접촉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보건·외교 장관 출신으로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WHO 사무총장이기도 한 게브레예수그 사무총장은 대표적인 친중파 인사기도 하다. 중국 외교관들은 게브레예수스를 사무총장에 선출하기 위해 막강한 자금력과 지원금을 무기로 내세워 개도국들을 지원운동에 벌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도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시 주석을 만나 “중국의 조치가 신종 코로나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대한 시 주석의 상세한 지식에 매우 감명 받고 고무됐다”고 추켜세웠다. WHO가 지난달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한 당시에도 “WHO는 중국의 전염병 통제 능력을 지속해서 신뢰할 것”이라며 “국제적인 여행과 교역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조처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