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하굣길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배움터 지킴이’가 퇴직 공무원들의 ‘장기 일자리’로 굳어지자, 국민권익위가 우대 조항 삭제를 권고했다. 올해부터 학교 현장에 권고 내용이 전달됐는데, 제주에서는 퇴직 공무원을 응모자격에 포함하고, 지킴이 근무 경력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일반인의 진입을 막는 경우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교육 당국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제주에는 총 191개교에 214명의 배움터 지킴이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현재 근무학교 재직 기간을 보면, 5년 이상이 118명(55%)으로 절반을 넘고, 10년 이상도 28명(13%)으로 집계됐다. 최장기 근무자는 한 학교에서만 17년째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움터 지킴이는 학생 안전을 지키는 봉사의 개념으로 도입되면서, 배치 초기 퇴직공무원을 우대 선발했다. 때문에 경찰이나 군인, 교사, 교장 출신 등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그간 최초 선정된 배움터 지킴이가 장기간 비공개로 재위촉되면서 특정 직종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었다. 학생들의 체격이 커지는 중·고등학교의 경우 연로한 퇴직자보다 경비·경호 자격 소지자나 응급구조사, 학교안전지도사, 사회복지사 등 민간 경력자가 학생 안전관리에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2018년 학생보호인력 제도의 부패 요인을 개선하기 위해 퇴직공무원 우대를 폐지하고, 재위촉 횟수를 학교당 5회로 제한하는 공정성 제고 안을 발표, 2020년부터 일선 교육현장에 적용되도록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권고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제주 교육현장에서는 이 같은 권익위의 권고안이 안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 현재 배움터 지킴이를 모집 중인 학교 중 상당수가 응모자격에 ‘퇴직 공무원’이나 ‘교사’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 초 제주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제시한 심사기준표도 권익위의 취지를 고려하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경력 30점, 자격 30점, 면접 40점으로 배분하면서, 경력에서 학교 배움터 지킴이로 근무한 경력을 최고 30점(3년 이상)까지 가점을 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일반인은 사실상 전문성 가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제주지역 배움터 지킴이 214명 중, 3년 이상 근무 조건을 충족해 경력 항목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68명(78%)에 달한다.
취재 중 만난 교육 관계자들은 “좁은 지역사회이다 보니 하던 사람이 계속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배움터 지킴이가 퇴직 공무원들의 용돈 벌이가 되고 있다는 오해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권익위 사회제도개선과 관계자는 “심사기준에 배움터 지킴이 경력 가점을 넣은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며 “장기 위촉자가 많은 것이 제주의 특수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현장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배움터 지킴이는 학교 실정에 따라 1일 4시간 이상 탄력적으로 근무한다. 1일 지급 실비는 제주의 경우 4만5000원이다. 제주지역 학교 중 현 근무자의 근로기간이 5년을 넘어 올해 새롭게 배움터 지킴이를 선발해야 하는 학교는 전체 191개교 중 118개교에 달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