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지급한 연구개발비를 빼돌리거나 엉뚱한 곳에 사용한 연구기관 및 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연구 개발 목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는 증빙 서류를 서로 다른 정부부처에 이중으로 청구해 돈을 타낸 신종 수법도 확인됐다. 연구개발 예산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연구비 부정사용 사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 감시단은 7개 정부 부처와 공동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 정부지원금 집행 실태 점검 결과’를 4일 발표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많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농촌진흥청이 실태 점검에 참여했다. 지난해 5~11월, 35개 사업을 수행하는 124개 기관·업체의 연구비 집행과 사후관리 적정성을 들여다봤다.
지원 받은 연구비를 용도에 맞지 않게 쓴 155건, 연구비 중복 청구 23건 등 모두 267건이 적발됐다. A업체는 연구원들의 연구수당 5000만원을 횡령하고, 인건비 3억4900만원을 법인카드 결제 대금으로 유용했다. B업체는 정부 연구개발비로 910만원짜리 장비를 구입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으나 연구과제와 무관한 장비였다. 정부 조사단이 현장에 가보니 구입했다는 장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 기관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연구원으로 둔갑시켜 연구수당 5400만원을 부당 집행했고, 연구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까지 연구원에 포함시켜 인건비를 부당 지급한 곳도 있었다. 여러 업체로부터 물품을 구입하고 반품했으나 물품 대금을 돌려받지 않아 연구비가 과다 집행된 사례도 89건에 달했다.
또한 소모성 재료를 구입한 뒤 증빙 서류를 여러 정부 부처에 내고 중복해 돈을 타내기도 했다. 정부 부처들이 연구 사업과 관련해서 정보공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칸막이 행정’을 악용한 신종 수법이다.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양태의 연구비 부정수급 사례다. 유관 부처들의 정보 교류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는 23건에 금액은 4600만원이다.
정부는 연구비 횡령·유용 등 중요성이 크거나 고의성이 의심되는 6건에 대해 고발 및 수사의뢰하고, 적발된 267건 중 245건은 부당하게 집행한 돈을 환수하도록 했다. 환수액은 23억7000만원이다. 또 3개 기관 6명은 일정 기간 정부 연구개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