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고 유동룡 선생 경주타워 저작권 인정…12년 법정공방 끝

입력 2020-02-04 15:24
세계적인 재일 한국인 건축가 故 유동룡 선생(1937~2011, 예명 이타미 준).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

세계적인 재일 한국인 건축가 고(故) 유동룡 선생(예명 이타미 준)이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품고 있는 경주타워의 디자인 저작권자로 인정받았다.

(재)문화엑스포는 오는 17일 건축가 유동룡 선생을 경주타워의 원 디자인 저작권자로 명예를 회복시키고 12년간 이어져 온 긴 법정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현판식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디자인 표절 등으로 상처 입은 유동룡 선생의 명예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주타워는 지난 2004년 (재)문화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을 거쳐 2007년 건립했다.

당시 공모전에 참가한 유동룡 선생은 신라불탑을 음각으로 투영한 설계를 제출했다. 전망대와 타워 중심에 음각으로 새겨진 빈 공간을 통해 신라 건축문화의 상징을 표현하고 불타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의 모습을 되살리고자 했다.

해당 설계는 우수작으로 선정돼 상금 1000만원을 받았고 최종 당선작에는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경주엑스포는 경주타워 건축과정에서 5차에 걸친 설계자문위원회를 거쳐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 처리하기로 하고 당선작의 설계를 변경해 현재 모습의 경주타워를 건축한 것으로 당시 밝혀졌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공모전 당시 유동룡 선생이 출품한 디자인안(왼쪽 (주)아이티엠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과 경주타워와 경주엑스포공원 전경사진(문화엑스포 제공).

이후 완공한 경주타워의 모습이 유동룡 선생이 제출한 설계와 유사하다며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유동룡 선생 측은 2007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형사소송과 2009년 엑스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012년 ‘건축물에 저작권자 성명을 표시해 달라’며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형사소송은 불기소 처분이 났지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저작권자 성명 표시 소송은 법원이 유동룡 선생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원저작권자가 유동룡 임을 명시한 표지석이 2012년 설치됐다.

지난해 9월에는 표지석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데다 문구의 도색까지 벗겨져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까지 이어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타워의 저작권 침해 소송과 관련한 일련의 내용을 보고받고 원 디자인에 대한 인정과 적극적인 수정조치, 저작권자인 유동룡 선생의 명예회복 등을 지시하는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면서 이번 현판식이 열리게 됐다.

유가족은 지난해 10월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취하했다.

이번에 설치한 현판은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대형 철재 안내판이다.

현판은 유동룡 선생의 건축철학과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2010년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 등의 수상경력을 비롯해 제주핀크스 골프클럽 클럽하우스와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대표작을 내용으로 기록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던 과오를 반성하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은 건축계나 사회 전반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경주타워는 유동룡 선생의 상징성에 힘입어 100년, 200년 후에도 한국의 대표 건축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엑스포 측은 유동룡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는 2021년 특별 헌정 미술전 등 추모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주=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