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창궐을 경고했다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괴담 유포자로 몰렸던 한 의사가 사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뒤늦게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영국 BBC방송은 3일(현지시간) 우한 중앙병원 소속 안과의사 리원량의 사연을 소개하며 “우한시 당국이 신종 코로나 발생 초기 얼마나 잘못된 대응을 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도했다.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30일 업무 중 기침과 고열,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환자들에 대한 검사 보고서를 보게 됐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로 의심되는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7명에 달했고 이중 한 명은 중앙병원에 격리 수용된 상태였다. 그는 이 사실을 즉각 의대 동문 단체 채팅방 등에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그와 몇몇 동료 의사들은 바이러스 창궐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중국 온라인망에도 전파했다.
나흘 뒤 중국 공안국 관계자들이 리원량을 찾아왔다. 유언비어를 온라인상에 퍼뜨려 사회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리원량에게 나쁜 소문을 유포하는 불법 행위를 계속할 시 기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협박성 서류를 들이밀고 서명을 강요했다. 당국의 협박 속에 리원량은 서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안은 그의 동료 의사 7명에게도 똑같은 서명을 강요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나서야 반전이 일어났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지난달 28일 “8명의 우한 의료인들이 인지한 사실은 진실에 부합했다”며 이들에 대한 공안국의 조치를 비판하는 내용의 이례적인 성명을 냈다. 리원량도 같은 달 31일 협박성 서류의 사본을 웨이보에 게재하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BBC는 “우한시 당국도 그에게 사과했지만 너무 늦은 사과였다”고 전했다.
공안 관계자들이 다녀가고 일주일여 뒤 리원량은 녹내장 환자를 치료하다 그 자신도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다. 지난달 10일부터 신종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틀 뒤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부모 역시 비슷한 증세로 함께 입원했다. 우한시 당국은 지난달 초까지도 신종 코로나 관련 정보를 통제하려고 애썼고, 중국 보건당국도 감염된 동물과 직접 접촉한 사람만 바이러스에 전염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리원량은 수차례에 걸쳐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가 확진을 받은 건 지난달 30일이었다. 그는 웨이보에 “오늘 핵산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다. 마침내 확진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0일이 돼서야 뒤늦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BBC는 리원량은 자신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뒤 웨이보에 “내가 감염됐는데도 왜 당국은 아직도 의료진 감염 사례가 없다고 하는지 의아하다”는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 확진을 알리는 리원량의 글에는 중국 네티즌들의 찬사와 응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하며 “더 안전한 공중보건 환경을 위해 수천, 수만명의 리원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