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보다 무서운 메뚜기떼…동아프리카 비상사태

입력 2020-02-03 17:03
케냐의 농장에 나타난 메뚜기 떼. EPA연합뉴스

지구촌을 떨게 만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신종 코로나)가 아직은 아프리카까지 확산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열악한 보건 시스템 때문에 감염에 취약한 만큼 신종 코로나 유입을 차단하는데 필사적이다. 하지만 동아프리카에서는 신종 코로나보다는 당장 식량 안보까지 위협하는 메뚜기떼가 더욱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소말리아 정부가 2일(현지시간) 메뚜기떼 창궐과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소말리아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막 메뚜기가 소말리아의 취약한 식량 안보 상황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거대한 사막 메뚜기떼가 막대한 작물과 사료를 먹어치우면서 사람과 가축을 위한 식량원이 위험에 처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메뚜기떼 창궐로 식량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소말리아 정부는 올해 4월 추수기 전까지 메뚜기떼를 막는 데 총력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31일 파키스탄 정부도 메뚜기떼 창궐 때문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우리는 20여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 습격을 받았다”며 “농가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6월부터 이란에서 메뚜기떼가 넘어 들어와 목화, 밀, 옥수수 등 농작물을 황폐화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항공기로 살충제를 대량 살포하는 등 메뚜기떼 박멸에 필사적이다.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에서 주로 서식하는 사막 메뚜기의 성충은 하루에 2g을 먹는다. 평균적으로 사막 메뚜기떼는 1㎢ 당 최대 1억5000만 마리가 움직이는데, 하루에 사람 3만5000명의 소비량에 맞먹는 작물을 먹어치운다. 바람을 타면 하루에 최대 150㎞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 군집을 이루면 사우디의 홍해 주변과 중부 사막 및 걸프 해역을 넘어 이란과 파키스탄까지 북상해 농업에 해를 끼친다.

메뚜기떼의 창궐은 이상기후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가을 동아프리카에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케냐, 소말리아 등에서 메뚜기가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우간다, 남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등에서도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최근 케냐에서 메뚜기 떼는 70년 만에 최대 규모이고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도 각각 25년 만에 가장 많은 메뚜기떼가 출현했다. FAO는 동아프리카에서 메뚜기떼 규모가 올해 6월까지 현 수준의 500배로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엔은 “동아프리카는 이미 가뭄과 홍수, 정치·종교적 분쟁 등으로 식량 부족이 심각해 1900만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메뚜기떼로 인한 식량 안보, 생계, 영양실조의 위협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