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샌더스 지지자 “바이든 후보되면 대선 투표할지 고민”
하지만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 “‘바이든이냐, 샌더스냐’는 무의미”
“트럼프에게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선 후보로 좋아하는 정치인 안 뽑혀도 민주당에 투표할 것”
미국 민주당에서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일(현지시간) 오전 11시 30분 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의 한 쇼핑몰 앞에서 유세를 진행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하루 앞둔 이날, 샌더스 상원의원은 4개 유세를 진행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아이오와시티 유세는 이날 두 번째 일정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릭키 휴스턴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서 샌더스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아이오와주를 지난주에 찾았다”고 말했다. 휴스턴은 “샌더스는 그에게 투표하는 것을 신나게 만드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는 매튜 쿱맨도 샌더스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위해 아이오와주로 왔다. 쿱맨은 “샌더스는 미국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며 “샌더스는 부자가 아니라 나처럼 일하는 계층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전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휴스턴은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이길 것이며,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물리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 휴스턴에게 ‘만약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바이든을 위해 투표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휴스턴은 “대선 당일 아침이 돼야 투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휴스턴은 “바이든이 인종차별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보다야 나은 정치인이지만, 샌더스처럼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휴스턴은 지금 민주당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지자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는 바이든과 샌더스로 갈라져 있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급진주의자 샌더스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면서 “바이든이 필승카드”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샌더스 지지자들은 정반대의 얘기를 하는 상황이다. “식상한 이미지의 바이든을 내세워서는 트럼프에 승리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도 성향의 바이든과 진보적인 샌더스 간 혈투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강적을 앞에 두고 적전 분열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유세 현장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대선 후보가 되지 않더라도 이번 대선에서는 꼭 민주당에 표를 던져 트럼프의 재선을 막겠다”고 말한 지지자들이 더 많았다. 내키지는 않지만 민주당이 똘똘 뭉쳐야 트럼프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 지지자들에겐 반면교사도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는 점도 지목된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에 패배하자 실망한 샌더스 지지자들이 대선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졌다. 휴스턴과 함께 샌더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알렉산드라 요베보웬은 “바이든이 대선 후보가 된다면 그를 위해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벤 더닝턴은 샌더스와 역시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사진을 합성한 그림을 들고 샌더스의 연설을 들었다. 아이오와주에 사는 더닝턴은 “이번 코커스에서 샌더스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고, 워런이 부통령이 되는 것이 내 꿈”이라고 강조했다. 더닝턴도 ‘바이든이 대선 후보가 된다면’이라는 가정에 편치 않은 기색을 보였지만 “그래도 바이든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아이오와주 주민인 레이첼 해밀턴은 “우리를 위해 싸우는 샌더스에게 코커스에서 내 표를 주는 것은 당연한 보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를 너무 바라지만, 트럼프가 또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샌더스는 민주당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팬층을 확보한 후보다. 샌더스는 유세에서 “1%의 부자가 아닌 99%를 위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미국인에게 정부가 운영하는 단일 건강보험을 제공하겠다는 ‘메디케어 포올’도 꺼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그가 탄 버스가 떠날 때에도 지지자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이든은 이날 아이오와주에서 2개 유세 일정을 소화했다. 바이든은 오후 5시 10분 아이와주 주도인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 체육관에서 마지막 유세를 진행했다. 수백 명의 지지자들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된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인 슈퍼볼 관전을 미루고 바이든의 유세 현장을 찾았다.
바이든은 “우리는 미국을 통합할 대통령이 필요하다”면서 트럼프의 분열주의를 비난했다. 또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샌더스에 비해 팬덤은 약하지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유세현장도 샌더스와 비교할 때 차분했다. 그리고 “바이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아이오와주에 사는 제레미 모리슨은 “바이든은 급진적인 샌더스와 달리 안정감을 주는 후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샌더스가 대선 후보에 뽑히더라도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바이든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위해 왔다는 린 피쉐브루셔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바이든을 공격하겠지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라며 “바이든은 트럼프로 인해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후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지만 트럼프를 다시 안 볼 수만 있다면 샌더스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와 딸로 구성된 워니악 가족도 바이든 유세현장을 찾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들 가족은 “코커스에서 찍을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바이든도 좋은 후보여서 그의 유세를 듣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은 ‘바이든이냐’, ‘샌더스냐’보다 트럼프를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오와시티·디모인(아이오와주)=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