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승무원이라 잠재적 보균자라고…” 기피 시선에 우는 승무원들

입력 2020-02-02 00:07 수정 2020-02-02 00:0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인천공항 =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국내에서도 급속도로 번지자 시민들 사이에 번진 공포감이 승무원들을 울리고 있다. 해외를 자주 오가는 승무원들의 특성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자주 노출된다는 생각에 승무원 엄마를 둔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등원 거부 요청까지 받았다.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에는 “자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엄마가 승무원이라 불안하니 등원을 안 시키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국내 한 항공사에 종사하는 승무원이라는 이 글의 작성자는 “퇴사하고 싶은 마음 가득”이라며 “엄마가 승무원이라 잠재적 보균자라나 뭐라나…슬프고 아이들에게 죄인이네요”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분명 며칠 전까지는 일하는 자랑스러운 엄마였는데”라며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게 맞느냐. 승무원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럼 다 잠재적 보균자냐”고 반문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 교민들이 탑승한 대한항공 전세기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교민들이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 지어 서 있다. 뉴시스

다른 승무원도 “저도 엄마가 승무원이라는 이유로 어린이집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저 자신도, 혹시나 저 때문에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속상하다”도 서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한 승무원은 “오늘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수첩에 비행기 내에서는 ‘에어커튼’ 덕분에 감염이 쉽지 않다는 내용을 구구절절 적어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항공기는 통상 가열 멸균된 공기를 헤파(HEPA·High Efficiency Particulate Air) 필터를 통해 기내에 공급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운항 중 엔진을 통해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고 내부 공기는 항공기 외부로 배출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내가 2∼3분마다 환기된다. 특히 객실 내 공기는 수평으로 흐르지 않고 구역별로 수직으로 흐르는 이른바 ‘에어커튼’ 방식이어서 바이러스 등이 앞뒤로 퍼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럼에도 일부 병·의원에서는 진료 예약시 의료기관 전산시스템(DUR)을 통해 승무원의 해외 국가 방문 이력을 확인한 뒤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항공사의 승무원은 “코감기 증상이 있어 병원 진료를 받고 싶었는데, 지난주 중국 퀵턴(목적지에서 체류하지 않고 바로 돌아오는 비행)을 다녀온 게 신경 쓰여 관할 보건소에 연락했더니 동네 병원에서 진료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다”며 “항상 다니던 집 근처 내과에 갔는데 접수 뒤 병원 측에서 중국 입국 이력이 있어 진료가 힘들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보건소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병원 안에서 보건소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했고, 저는 병원 밖 복도에서 진료 전까지 대기해야 했다”며 “호명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저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게 너무 속상했고 맡길 곳이 없어 유모차에 태워 간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며 회사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승무원들이 늘고 있다. 한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은 회사 측에 “중국 비행을 퀵턴으로 다녀온 뒤 치과에 갔는데 치과에서 중국에 다녀왔기 때문에 진료를 안 하겠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건소에서 단순 ‘감기’라는 검진을 받았는데도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고 거점 진료소로 이동하라고 했다는 기장의 사례도 있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항공사 종사자는 현지에서 가장 늦게 철수하는 직종 중 하나”라며 “지금도 중국에 우리 국민이 많이 있는데 이런 공포증 때문에 항공사가 단항하고 철수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수송할 거냐”고 반문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인근 지역에서 철수한 교민을 태운 전세기가 31일 오전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한 교민 어린이가 관계자의 품에 안겨 대한항공 전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우한시 등 후베이성 일대에 고립됐던 우리 교민 701명은 2차례에 나눠 투입된 정부 전세기를 타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입국 이후 이뤄진 보건당국의 검역에서 증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교민들은 각각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520명, 진천 공무원인재개발원에 167명이 배정돼 2주간 격리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의 봉쇄 지역에는 여전히 영유아와 어린이, 임신부 등을 포함한 우리 국민과 가족이 모두 125명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별로는 후베이성의 중심 도시인 우한에 머무르는 이들이 85명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는 우한시 바깥의 외곽 도시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세 미만의 영유아가 15명, 6∼13세 어린이가 9명 포함돼있다. 임신부도 2명이 있다.

우리 교민 대부분이 철수한 가운데 우한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외교관들은 그대로 남아 교민 보호 업무를 이어갈 계획이다.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은 “국가에서 전세기까지 동원해 국민들을 무사하고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게 해준 것 자체가 굉장히 가슴 뿌듯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