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삼성·LG’ 사정권?…적용·세금증가 여부 아직 불투명

입력 2020-01-31 15:38 수정 2020-01-31 15:46

OECD 디지털세 큰 골격 합의
고정사업장 없는 나라에도 세금 내야
적용 범위에 ‘제조업’ 포함 삼성, LG, 현대차 등 사정권
다만 구체적인 기준 추후 논의…결과에 따라 적용 여부 달라져
대상 된다고 해도 총 세금 크게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다른 나라에 세금 내면 자국 세금 그만큼 깎아줘…“중립 유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디지털세’ 골격을 마련했다. 디지털세는 구글 등 사업장이 없는 나라에서도 이익을 얻는 다국적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제조업이 적용 범위에 들어가면서 삼성, LG, 현대차 등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확정되지 않았고, 한국 기업이 내야 할 총 세금도 크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어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OECD는 지난 27~30일 BEPS IF(Inclusive Framework) 운영위원회 및 총회를 열고 디지털세의 기본 골격을 합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총 110개국이 참여했다. OECD는 올해 말까지 기본 골격을 토대로 최종 방안을 만들 계획이다.

디지털세는 국가간 과세권을 나눠 갖는 것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고정사업장이 있는 나라에서 이득을 얻고, 세금을 냈다. 그러나 구글 등 다국적 디지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고정사업장이 없는 나라에서도 이득을 내는데, 세금은 내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다국적 기업은 고정사업장은 세율이 낮은 나라에 두고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수행해 이익을 내는 ‘조세 회피’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OECD 내 국가들이 기준을 만들어 ‘과세 구멍’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두 가지 방안이 결정됐다. 일정 규모 이상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이익 일부는 고정사업장이 없는 나라에서도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적용 업종은 디지털서비스사업과 소비자대상사업이다. 온라인플랫폼, 콘텐츠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등 디지털 뿐만 아니라 컴퓨터, 가전, 휴대폰, 옷, 화장품, 사치품, 자동차 등 제조업까지 포함한다. 다만 중간재·부품 판매업과 직접 판매 및 단순 재판매, 중개업자를 통한 간접판매, 광업, 농업, 원재료 판매업, 금융업, 운송업 등은 제외한다.

제조업이 대상에 들어가면서 한국 기업도 사정권에 들어갔다. 삼성과 LG, 현대자동차 등이다. 삼성의 경우 반도체는 ‘중간재’로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가전과 모바일 및 스피커 등은 적용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적용 여부는 불분명하다. OECD는 이날 글로벌 총매출액, 대상사업 총매출액, 이익률, 배분대상 초과이익 합계액이 일정 규모 이상, 시장소재국 내 중요하고 지속적인 참여가 확인되는 경우 등 ‘적용 대상’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포함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여러 가지 세부 사항에 따라 한국 기업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 될 가능성도 있다”며 “소비자대상사업은 과세권 배분 대상 범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OECD가 합의한 과세 방식은 글로벌 이익을 결정하고, 여기서 통상이익을 제거한다. 이후 남은 초과이익 중 시장 기여분에 해당하는 배분금액을 결정한다. 그리고 배분금액을 기준에 따라 국가별로 배분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 적용 대상이 된다고 해도 기존 보다 세금이 크게 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OECD는 디지털세 도입에 ‘세부담 중립성’ 원칙을 고려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내야할 총 세금이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대신 총 세금을 국가간 나눠 갖는 비율이 달라진다. 쉽게 말해 한국 기업이 우리 나라에 냈던 세금 중 일부를 다른 나라에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세금을 내게 되면 정부는 국내에서 내는 세금을 그만큼 깎아준다. 조세 회피를 위해 본사가 저세율 국가 등에 있는 다국적 기업은 세부담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본사가 주로 한국에 있는 우리 기업의 세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실장은 “디지털세는 국가간 과세권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문제다”며 “특정 기업이 내는 글로벌 세부담을 원칙적으로 중립이 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예를 들어 우리 나라 기업이 디지털세 과세 대상이 된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세금을 내면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 공제를 받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결국 하나의 기업을 향한 과세권을 나누면서 국가간 걷어들이는 세금의 양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우리 기업에서 걷는 세금이 줄어들 가능성, 외국 기업에서 새롭게 세금을 걷을 가능성 등을 조합해서 총 세수 효과를 예측할 계획이다.

OECD는 이날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도 합의했다. 다국적 기업이 자회사 등을 저세율 국가에 두고 세금을 거의 내지 않으면 본사가 있는 국가가 해당 부분까지 포함해 최저한세율로 과세를 하는 것이다. 본사와 지사가 있는 국가에서 이중으로 세금을 공제 받는 일도 차단한다.

OECD는 올해 말까지 최종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내년 이후까지 다자조약 등 규범화 작업을 추진한다. 임 실장은 “실제 도입에는 2~3년 정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