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름 쓰지마” 결정에 靑 출신 인사들 부글부글

입력 2020-01-30 19:12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청와대 출신 총선 출마자들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공천 여론조사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던 전·현직 대통령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로 정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집단행동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는 지난 29일 후보자 공천심사 시 공천적합도(당선가능성) 여론조사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전·현직 대통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일단 경쟁력이 없는 청와대 출신 예비후보를 걸러내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향후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현재 수석비서관급부터 비서관, 행정관 출신까지 ‘문재인 청와대’ 꼬리표를 단 출마자는 줄잡아 70여명에 이른다. 민주당은 몇몇 지역을 대상으로 대통령 이름이 포함된 경력 표기 여부에 따라 같은 후보자의 여론조사 결과의 차이를 조사해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 이름을 경력에 포함할 경우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까지 공천적합도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이유로 당에선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문재인 프리미엄’만 바라보고 출사표를 던지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많았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30일 “후보 열 중 아홉은 별의별 경력을 다 갖다 붙이며 ‘대통령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친박 마케팅’을 연상시킬 수도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당내 경력 표기 기준인 6개월만 겨우 채우고 총선에 뛰어든 청와대 행정관 등 일부 인사들에 대한 당내 반감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반면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은 경선 때마저 대통령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청와대 출신 인사는 “공관위 차원의 적합도 조사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추려내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한다”며 “하지만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향후 경선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2년 전 지방선거 때까지 대통령 이름을 쓰게 했는데 이제 와서 이를 뒤집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느냐”고 따졌다.

일부 인사들은 선관위에서 같은 결정을 내릴 경우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한 인사는 “그동안 대통령 참모 출신이라 대응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최종 경선 단계에서도 공정하지 못한 결론이 내려지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며 “현역 의원들은 ‘현역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리면서 우리한테만 정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자기들만의 기득권 챙기기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인지도가 낮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지역구 곳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나왔지만 여러 사정으로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주형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고향 대전 동구 출마를 목표로 나섰지만, 좋은 후보들이 계셔서 총선에서 더 나아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주 전 보좌관은 지난해 3월 경제보좌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10개월 만인 이달 초 사퇴하고 출마를 준비해 왔다. 당 주변에선 선관위가 경선 여론조사에서 경력 사용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후보자들 간 갈등이 증폭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